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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부러지지 않는 ‘정의’를 고대하며

by Joanne

엄마 C의 시선


영화 “부러진 화살”은 2007년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판사 습격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2011년 개봉되었던 영화입니다. 1991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조교수로 처음 임용된 후 1993년 조교수로 재임용이 되었던 “김명호”는 1995년 해당 학교의 대학 입시 본고사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재임용 거부라는 징계성 처분을 받자 부당 해고에 항의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이라는 명칭의 민사 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된 것에 분개한 그는 1심의 담당 판사였던 서울고등법원의 “박홍우” 부장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다가 격렬한 몸싸움 끝에 체포되면서 같은 해 10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습니다.


2007년 1월 발생 이후 “판사 테러 석궁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한동안 신문과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했을 만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작가인 서형이 2009년 출간한 법정 논픽션 “부러진 화살”이라는 – 영화가 제목을 그대로 딴 – 책으로 먼저 다루어졌는데, 영화에서 “신재열”이라는 판사 역을 맡기도 한 배우 문성근이 이 책을 읽고 감독 정지영에게 영화 제작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정 사건과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논픽션을 주로 쓰는 작가 서형은 1인 시위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대법원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접하게 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재판의 증인으로 서는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재판을 참관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개봉 이후 손익 분기점을 금세 넘길 만큼 흥행 몰이를 하며 다음 해 초(2012년 2월)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고, 같은 시점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이 사건과 영화가 다루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상 “김경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원칙을 중요시하고 자기 주장이 워낙 강해 교수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학교의 입시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출제된 수학 문제에서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지적을 이어 가는데, 이로 인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을 들으며 해고 당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부당 해고를 호소하며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를 당하자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그는 담당 판사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가 기다리고 있다가 엘레베이터 입구로 들어선 “박봉주” 판사(실제 인물 “박홍우”)를 뒤에서 부르고는 준비해 간 석궁을 판사에게 겨누며 실랑이를 벌이다 주위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러나 ‘석궁’이라는 무기의 위협감뿐 아니라 피해자가 판사라는 사실로 인해서도 이 사건은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는데,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판결한 판사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사법부 전체를 향한 테러, 법치주의에 대한 공격과 도전으로까지 받아들여지면서 김경호의 행위에는 “특수협박죄”와 “살인미수죄”가 적용됩니다. 이런 와중에도 그가 자신의 변호사들을 제치고 스스로 변론에 나서거나 판사와도 말다툼을 벌이는 등의 행태를 보이며 수임하겠다는 변호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 노동 전문 변호사로 소신 있는 삶을 살았지만 현재는 의욕을 잃고 사무실 폐업을 고려할 만큼 찾는 의뢰인이 없던 “박준”이라는 변호사(실제 인물 “박훈”)가 과거부터 자신과 개인적 친분이 있던 – 그리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개입 중이던 - 기자 “장은서”의 중간 역할로 인해 사건을 맡으면서 김경호를 돕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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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활약을 보이는 박준 변호사가 결정적 증거물인 “부러진 화살”이 검찰 측에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박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위치가 미심쩍은)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검증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는 한편, 장은서 기자는 재판 과정의 불합리성들을 문제 삼아 “석궁 테러 증거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냅니다. 이와 함께 사회 각층에서 김경호에 대한 석방 요구가 이어지고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지요. 그러한 분위기에 심리적 부담을 느껴서인지 최초에 사건을 맡았던 “이태우” 판사(실제 인물 “이회기”)가 사임을 결정함에도 사법부는 곧 “수석부장 판사회의 석궁테러 엄단 재천명”을 선언하는데, 그로 인해 여론은 법치주의를 비판하며 판결의 부당성을 항의하는 쪽으로 더욱 들끓습니다. 담당 판사가 “신재열(실제 이름 “신태길”)로 바뀐 후에도 자신은 위협을 목적으로 활을 가져간 것일 뿐 화살을 쏘지는 않았다는 김경호의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방송을 통해 이 사건과 재판의 진실을 알리려던 장은서 기자의 기획 프로가 무산되는 상황도 빚어지는데, 재판을 거부하며 참석하지 않는 김경호에 대해 신재열 판사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합니다.


“법정 드라마”로 불리는 장르의 공통 요소인 난해하고 까다로운 법률적 측면을 이 영화 역시 갖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법정 영화들에서 ‘옳은’ 편과 ‘옳지 않은’ 편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과 달리 – 저희가 다루었던 외화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와 “어 퓨 굿맨(A Few Good Men),” 언젠가 다룰 수 있을 한국 영화 “변호인”이나 “도가니” 등처럼 – 흑과 백을 엄격히 구분하기 어려운 사건을 다루는 이 작품에는 자체적 완성도를 떠난 여러 논점들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선 피고인인 실제 인물 김명호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인식과 의견이 크게 갈리는데, 당락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입시 문제의 오류에 대해 정당한 이의 제기를 한 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일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주장하던 학계의 반발이 무척 컸으며, 전국 44개 대학의 수학과 교수 189명도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 정상급 수준의 저널에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 실적을 내며 ‘수재’로 인정 받던 김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다면 과연 누가 재임용될 자격이 있겠냐는 연판장을 돌리면서 성균관대 측을 압박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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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법계와 일부 언론들의 인식은 이와 전혀 달라, 김명호의 재임용 탈락이 단지 문제 오류에의 지적 때문만은 아니며 학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동료 교수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일에 있어서는 품성과 자질에서 인격적 결함이 많았다는 주장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방적으로 김명호에게 우호적인 데다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듯한 기조의 이 영화에서조차 출제 문제의 오류를 덮고 넘어가자는 학교 측의 설득에 강력히 반대하는 그를 향해 동료 교수들이 “눈치가 없는 거야, 혼자 잘난 거야”라거나 “논문만 잘 쓴다고 출세하는 줄 알아”와 같은 말들로 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장면, 또한 재판장들에게도 독설을 서슴지 않으며 ‘타협’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김명호의 유별스러움 때문에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변론을 포기하는 상황을 보여 주면서 평소의 그가 드러내던 독존적 성격을 간접 묘사합니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판단이 학교 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것이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품위와 인격이라는 조건을 재임용의 평가 기준으로 삼은 대학 측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한 것이라는, 즉 사학의 교수 임용 ‘재량권’을 확인해 준 결정이라는 사실이 판결의 공정성을 문제 삼기 어렵게 한다는 분석도 고려의 여지가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만큼, 당시의 범행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은 입장에서 교수 지위 확인 소송 1심의 판단 결과나 석궁 공격에 대해 내려진 4년 형의 유죄 판결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 영화의 감상으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사건으로부터 1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인식’이 당시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에의 논의가 보다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의 대한민국에서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소위 상위 계층 인사들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전과 달리 불신과 비판의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인 듯하니까요. 제가 20대였던 시절만 해도 “사”자 붙은 직업에 대한 동경과 선망이 국민 전체의 ‘공통 정서’로 자리잡고 있어 속된 말로 “열쇠 3개”를 지참해야만 ‘넘볼 수’ 있는 배우자 감으로 인식되었으나, 지난한 의료 개혁 과정에서 그 민낯이 드러나며 “밥그릇 싸움”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의사와, 특정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며 “검찰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검사 등의 직종이 더 이상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대략 10년 전후 시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인식의 변화라면, 나름대로 마지막까지 대다수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유지하던 판사들에 대한 인식조차 최근 들어 급격히 바뀌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국민 전반의 교육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을 한국의 상황이나 정치-사회 분야에의 관심이 큰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 정도에 달하는 나라 전체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최고의 ‘권위’와 ‘정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판사라는 직위에 대해서도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할 시기가 이제 도래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현실인 듯합니다. ‘판단(judgement)’의 최종적 주체인 판사(判事) 역시 상황과 외압 등의 영향을 받는 인간이고 그런 인간들이 ‘시스템’이라는 미명하에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자의적으로 집행할 경우 시스템과 법 체제의 공정한 결정만을 믿고 의지하던 힘없는 일개 시민이 안전한 삶을 보호 받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문제들을 관련자의 개인사 정도로 취급하며 다수의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문제 의식을 공유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 문제 전문가 출신의 박준 변호사가 자신에 대한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흥분하며 “법이 모순 투성이의 쓰레기”라고 일갈하자 오히려 “법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나라는 형법이 잘 만들어져 있는 법치국가”라면서 옹호하던 김명호는, “법은 수학과 같아서 문제가 정확하면 답도 정확한, 모순 없는 체계”라고 강변합니다. 새로 자신의 사건을 맡게 된 신재열 판사를 “보수적인 분”이라 평하며 실망한 듯 박 변호사가 말했을 때도 그는 “나 역시 보수적인 사람이라 서로 잘 맞겠다”면서 “사회가 합의한 것을 지키자고 하는 보수가 왜 나쁘냐”고 반문하지요. 그런 그가 자신의 재판을 두고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막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사법 체계가 공정한 집행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곤 하는 현실을 엿보게 됩니다. 오늘날 일부 판사와 그들의 판결에 관련해 일고 있는 여러 논란과 갈등은 가장 연약한 처지의, 진정한 ‘정의’의 도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보호막으로 남아야 할 사법 시스템이 보다 정확하고 올바르게 작동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일 것이라 믿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려 보려 합니다.



딸 J의 시선


정지영 감독의 2012년 작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김명호 전 교수가 당시 교수 지위 항소심에서 패소한 이후 담당 판사 박홍우의 자택에 석궁을 들고 찾아갔던 소위 "석궁 사건"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로,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가끔씩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우려, 감시의 시선이 최대치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 특히 흥미로울 수 있을 영화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2007년 김명호 전 교수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적 효과를 위해 실화를 여러 방식으로 각색한 ‘드라마’ 장르의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은 2007년 "석궁 사건" 자체의 진위 여부를 다루기보다 그 사건을 모티브로 선택한 영화 안에서의 서사와 표현 방식들에 집중하고자 한다. 정치적 테러가 심각한 실제 문제로 엄존하는 현 상황에서 이 사건이 내포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인정하지만, 그 행동 자체의 문제성을 논하는 일은 제외한다는 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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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인 교수 김경호(안성기)는 1995년, 대학 입학 시험에 출제된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망신스러운 실수를 덮기에만 급급한 대학 측이 재임용을 거부하며 오히려 부당한 해고를 당한다. 유배 당하듯 한국을 떠나 가족들과 미국에 정착했던 그는 자신의 상황에 도움이 될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에 들떠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할 뿐 아니라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는 좌절을 겪게 된다. 결국 항소심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 박봉주(김응수)의 자택을 찾아간 김경호는 "왜 법을 어겼는지 자백하라"고 요구하며 그를 향해 석궁을 겨눈다.


이후 체포된 김경호는 석궁이 ‘겁을 주기 위한’ 위협적 도구였을 뿐 박봉주 판사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으며, 검찰이나 피해자 측의 주장과 달리 자신은 실제로 화살을 쏜 적이 없다는 주장을 거듭한다.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하고 유능한 변호사들 여럿이 김경호의 변호인단에 합류하지만, 어떻게든 검찰과 ‘합의’하여 감형을 유도하려던 변호사들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김경호와 계속해서 마찰을 빚다가 결국은 차례로 사임해 버리고 만다. 결국 김경호는 아내를 통해 지방에서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 "남의 눈치 보지 않는 변호사"로 그가 평가하는 - 박준(박원상)에게 사건을 위임하고, 박준은 친분이 있던 기자 장은서(김지호)와 공조하며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상이몽]을 위해 오래전 보았던 영화들을 다시 꺼내 볼 때마다 받게 되는 두 가지의 느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혹은 예전 감상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이라는 기분 좋은 깨달음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기억보다(혹은 과거의 감상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가 실망스럽다는 안타까운 감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진 화살]의 경우는 후자에 더 가깝지만, 작품성이 부족하다거나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의미보다는 이 영화가 내세우고 집중하는 주요 메시지의 전달 방식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음에도 좋게 말하면 '연극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작위적인 대사들, 그리고 영화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캐릭터 각각에게 주어진 경직된 역할들은 오히려 배우들과 작품 그 자체의 매력을 흐리는 면이 있다.


영화 안에서 김경호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옳음’의 위치에 있으며 자신의 신념에 대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대다수의 법정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의 토대는 ‘사건의 진실’이나 주인공의 범죄에 대한 ‘진위 여부’가 아닌데, 박봉주 판사에게 화살을 쏘았느냐 아니냐와 관계없이(물론 영화 속에서는 "아니다"로 주장된다) 도덕적 우위를 독점하고 있는 김경호는 법적 판결과 무관하게 ‘무죄’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설정 자체가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해도(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감정적, 도덕적으로 ‘결백’한 인물들을 다루는 창작물은 이미 넘쳐나기에) 설득력 있는 영화적 서사를 쌓는 일에는 상대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화 속의 모든 갈등은 김경호의 ‘옮음’, 혹은 그가 대변하는 ‘정의’에 대한 방해와 도전으로만 표현되고 이것이 작품의 서사를 평면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김경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옳음’에서 본질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한편 - 감옥에서 끔찍한 일을 당해 그의 ‘의지’가 잠시 약해졌을 때도 그의 정의감이나 신념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 동시에 ‘변화’하거나 ‘성장’하지도 않는다. 작품 안에서의 실질적 서사는 김경호의 변호인인 박준에게만 부여되는데, 과거의 고단하던 노동 운동을 경험하며 냉소적으로 변한 그가 김경호의 ‘옳음’에 감화되어 다시금 정의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처럼 영화 안의 모든 갈등과 변화는 김경호의 ‘옳음’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 과정에서 김경호의 역할은 부족함과 불안정성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으며 관객의 공감을 사는 한 ‘인물’로보다는 ‘정의’의 화신이나 의인화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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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개인적으로 느낀 몇 가지 단점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 작품의 의도나 메시지에 불만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한 번 더 밝혀 두고 싶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사건의 진실에 관한 ‘추리극’이 아닌 법과 그 시스템 자체에 대한 탐구이자 질책인데, 이는 나 자신이 늘 고뇌하고 씨름하는 개인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서 유래하는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정의’와, 법이라는 제도 아래 규정된 ‘정의’ 사이의 괴리감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낸다. 박준을 포함해 김경호를 거쳐 간 변호사들과 김경호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과 갈등이 이 괴리감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은, ‘법적 규칙’에 익숙한 변호사들이 말 그대로 ‘법 기술자’로서 김경호가 ‘법 아래’에서 최대한의 관대한 결과를 얻도록 하는 ‘전략’에 집중하는 반면, 무섭도록 대쪽 같은 ‘불도저’ 김명호는 법적인 규제와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진실’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기 때문이다. 변호사나 검사, 판사보다 더 자주 법을 인용하며 ‘법’에 대한 신뢰와 ‘법치주의’에 대한 헌신을 보여 주는 김경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상식’에 기반한 정의 구현인 셈이다. 그렇기에 판사를 직무 유기로 고발하는 등의 그가 취하는 행보들이 ‘법규’를 성실하게, 교과서적으로 따른 결과이긴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법의 ‘바깥’에, 다시 말해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의와 도덕에 대한 신념과 명제들 가운데에 위치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실제 법적 논리를 작품 속에 대입해 보면 이 두 ‘정의’의 대비가 더욱 뚜렷해진다. 작품 안에서 김경호의 ‘결백’을 입증하는 데에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되는, 그가 실제로 화살을 쏘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사실상 그의 형량과 죄목을 정하는 일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그에게 석궁을 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석궁이라는 무기의 ‘위험’을 ‘인지’한 상황에서 박봉주 판사를 위협하는 일에 그것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김경호의 죄를 입증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최대한 좋게 봐준다 해도 "미필적 고의"로 확증되기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런 만큼 김경호가 법 아래에서 ‘무죄’ 확정을 받는 것은 사실상 -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 - 불가능하다. 물론 김경호 본인은 자신의 행동이 부조리에 관한 대응이었기에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적 의미와 관계없이 자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말이다. 영화 속의 사법부 관계자들이 법률과 법적 절차를 무작위로, 그리고 부당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 김경호를 억압하곤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작품의 근본적 갈등은 법률적인 ‘정의’와 사회 통념상에서의 ‘정의’가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법부의 부패와 편향적 판결, 즉 시스템 ‘안’의 오염을 넘은 시스템 ‘자체’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변호사로 일한지 올해로 어느새 6년 차가(맙소사...) 되었다. 인권 문제를 다루며 크고 작은 딜레마를 마주하게 되지만 나를 가장 괴롭히는 난제는 앞서 언급한 법적 '정의'와 사회적, 상식적 '정의' 사이의 격차일 듯싶다. 많은 법조인들이 법 '기술자'로 매도 당하는 이유, 놀랍도록 비상식적인 판결이 쏟아지며 법적인 인정이나 승리마저도 실제적 회복과 연결되지 않는 까닭은 그 무엇보다 '공정'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법이 실제로는 진실이나 도덕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법의 한계에 반응하는 우리의 방식이 냉소나 체념에 머무르는 것을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혁신(progress)의 가장 큰 적은 물리적, 체계적 방해가 아닌 사회의 수동성(passivity, inaction)일 터이니 말이다. 법이 우리 사회의 궁극적 수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개개인이 그 몫을 해내야 한다는 자각을 일깨우는 동력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맞잡으며 만들어 낸 물결이 결국 어둠을 빛으로 끌어올리고 법을 바꾸며 시스템을 '뒤집기'도 했던 수많은 역사들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Unbowed”, 즉 "꺾이지 않는" 혹은 "굴복하지 않는"이라는 제목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사법부의 비리와 조작, 그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장벽을 표현하는 ‘부러진 화살’이야 어떤 모습이든, 숙명처럼 또 소명처럼 불의와 불공정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의무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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