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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6. 2022

세상 친구

사이비 2세로 살아온 대표의 비밀 공유 CH.6

난 무대에 서는 것이 겁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끄러워할수록 보는 사람도 부끄러워진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내가 자신감 있게 무대에서 행동할수록 

어느새 사람들의 에너지가 나에게 모이고 나에게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이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무대 위에서나 개인적으로 대할 때 말투, 말하는 속도, 시선처리, 제스처 너무나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도 속일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끄집어낼 수 있다. 


덕분에 나는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새 

수업은 물론 점심 때도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놀 수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점심때마다 구석 조용한 곳에 책가방을 매고 우두커니 서서 

이름도 모르는 비슷한 외톨이 친구들과 짧은 인사와 

혼자인 것처럼 보이기 싫어 나누는 몇 마디가 끝이었다. 


항상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나는 여자 친구 두 명과 남자인 친구 두 명과 가까이 지냈다. 


교회에서는 남자를 멀리하라고 했지만

학교에서 우리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나뿐이니 조금은 자유롭게 행동했다. 


죄책감은 조금 들었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스킨십이 없으면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인 친구 두 명은 잘생긴 편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키도 크고 백인이었고 만화에 주인공처럼 생겼었다. 

금발에 미남.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걸 좋아하고 록 음악을 좋아해

전형적인 애버크롬비 모델 느낌은 아니었지만 개성이 있어 

어렵지 않게 부담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을 포함해 수다를 떠는데

'발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나는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이성친구를 만나는 게 금이여서인지 몰라도 

난 단 한 번도 학교 외 성교육을 부모님에게 배운 적이 없고

또 미디어도 접하기 어려우니 단어 자체가 처음이었다. 


내가 멍하게 서있으니 남자인 친구가 나에게 

'써니, 너 혹시 발기가 뭔지 몰라?'

'응, 처음 들어 봐'

'아니 어떻게 처음 들어볼 수가 있어?'


친구는 나를 신기해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용어들을 배우게 되었다.


콘돔

정액

사정




아이들은 이런 단어조차 처음 듣는 나를 엄청 신기해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양인 여자애를 귀엽게 봐준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만큼은 친구 많고, 쾌활하고,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어쩌면, 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 죄책감 없이 저렇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사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는 일도 생겼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백인 여자 친구 애나의 생일이었고

애나는 나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애나의 집은 마당부터 지저분했고 들어서기 전부터 강아지가 짖어댔다. 


들어가니 머리가 산발인 애나 부모님이 나를 안아주며 반겨주셨다. 


"써니! 말 많이 들었어, 만나서 너무 반가워"


집 전체가 강아지 냄새가 났다 그리고 처음 맡아보는 허브 향이 났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교회 친구가 아닌 세상 친구의 집에 처음으로 놀러 온 것 만으로 

난 신이 나지만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친구 집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정리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이게 세상 사람들이 사는 집인 건가, 다들 이러고 사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애나의 방을 구경하고 친구들과 애나 아버지가 바비큐로 만들어준 패티를 넣어 햄버거를 만들어 먹었다.

오후쯤엔 노래방 기게를 켜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화질 구린 핸드폰으로 

서로 웃긴 영상을 찍으며 놀기도 했다. 


집에 갈 때쯤 애나의 부모님은 담배를 가지고 거실로 나오셨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에게 말을 하셨다.


'만약 너희들도 담배나 마리화나를 피우고 싶으면 우리 집에서 해,

몰래 하는 것보다 보호자랑 같이 하는 게 안전할 거야'


나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리화나? 대마? 


아니 나는 커피랑 라면도 못 먹고 세상 노래도 못 듣는데

마리화나를 피워도 된다고 먼저 말하는 부모님이 세상에 있다니.



난 그날부터 애나와 애나의 부모님이 더 좋아졌다. 


난 그 이후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마다 

낡았지만 거지 같음이 멋스러운 애나 어머니의 머스탕을 타고 

나에게 금지된 랩을 셋이 같이 들으며 선선한 캘리포니아 바람을 만끽하며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애나의 어머니가 머문 곳은 항상 대마 냄새가 났는데

어느 순간 냄새가 희미해질 정도로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애나는 반대로 나의 삶을 부러워했다.


애나는 금발의 백인이었지만 부모님이 히피 쪽이라 자라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참견도 청결이나 꾸미는 것도 조금 무관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나는 항상 웃을 때 입을 가렸다. 

제대로 양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어서 이가 노랬고 제때 교정을 받지 못해

전체적으로 치아가 삐뚤었다. 


머리는 곱슬이라 비가 오는 날이며 부스스했고

운동이랑은 거리가 멀어 살집이 있었다. 


나도 크게 예쁜 얼굴이나 몸매는 아니었지만

애나 눈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J-Pop에 나오는 사람들과 내가 똑같은 동양인이라는 게 예뻐 보였던 것 같다. 


거기에 애나가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던 아이들과 금방 친해져서

애나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애나는 사람들에게 

'써니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소개하는 걸 좋아했다. 


애나는 나의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자기 부모님과 싸운 날엔 나와 내 침대 위에서 울곤 했다. 


애나 눈엔 우리 집은 평온하고

대마 냄새도 안 나고 

친절하고 평범한 부모님이 있는 공간이라고 보였다.


거기에 우리 오빠는 키가 180이 넘고 기타를 연주하고 

좀 조용한 스타일이었는데 


우리 오빠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놀러 와 자고 가는 날이 많아졌고

나는 선택해야 했다. 


교회 사람들은 내가 세상 친구와 자주 노는 것을 못마땅해했고

애나와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왔다는 소식을 우리 엄마를 통해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애나를 전도해야만 했다. 


전도하기 위해 친해진 거라고 말을 해야 나의 위상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애나에게 교회를 같이 나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애나는 너무나도 좋아했다.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았고

또 우리 오빠와 다른 커뮤니티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 것 같았다. 


애나는 소속감을 간절히 느끼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애나와 매주 교회를 다녔고,

나의 다른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한 친구였다. 


그렇게 애나와 1년을 교회를 다녔고

우리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난 그저 세상 사람을 전도한 찬양 리더였다. 


나의 두 자아를 보여준 사람이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애나가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그리고 애나가 함께 교회를 다닌 지 1년이 넘어갈 때 즘

애나는 나를 자기 방에 불러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써니, 우리 교회 사이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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