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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Aug 19. 2019

자녀는 왜 동굴로 들어갔을까?

자녀를 동굴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

자녀는 왜 <동굴>로 들어갔을까? 다소 생뚱맞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여서 썼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시간이면 자녀는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자녀들은 저녁식사를 마치면 은근슬쩍 눈치를 보다가(이 말은, 밥 먹고 쌩~하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게 도덕적으로 미안해서 조금은 버티다가) "저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를 안 해도 되는 데 굳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자녀가 예의가 바른 것도 있지만 또 부모에게 내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소심한 선언을 담고 있기도 하다. 신기한 것은 정해진 시나리오도 없는 데 멘트는 거의 똑같다.


어찌 됐건 자기 방으로 들어간 자녀는 불러도 대답 없는 너가 된다. 그것도 아니면 아주 단답형으로 보답한다. 과일 좀 먹으라고 하면 '배불러요'가 끝이고, 재밌는 거 하는 데 같이 보자 라고 하면 '괜찮아요'가 전부다. 설령 언니나 형이 부모를 대신해서 방문이라도 열기라도 하면 작은 다툼도 벌어진다. 그래도 도덕성이 좀 더 있는 자녀는 애써 나와서 텁석 소파에 앉아 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좋아할 수 없는 게 그때는 다행히도 스마트폰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행동을 조종하는 건 스마트폰의 '알람'이고, 그 '알람'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자녀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수록 알람이 울렸을 때 행동은 잽싸다. 그렇게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걸 기대하는 건 힘들어진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단순히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름 꽤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그럼 도대체 자녀는 <동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부모님들의 생각이 맞다. 자녀는 스마트폰을 하느라 이미 바깥세상과는 사전 예고를 한 상태다. 그렇다면 자녀는 도대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녀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부모들은 보통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딱히 뭘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눈치가 보이는 건 당연하다. 스마트폰을 하는 자체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자녀들은 생각하고 있다. 평소 때는 <유투*>이나 <페이스*>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타이틀을 읽고 자체 검색을 하는 자녀의 기술력은 놀랍기만 하다. 그러다 친구한테 메신저라도 오면 자녀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뻔하다. 그들의 대화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진지한 내용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부르기도 한다. 그들에게 옐로카드를 제시하는 심판은 없다. 그래서 당당하고 그래서 적나라하다. 그래도 대부분의 자녀는 위험수위를 넘지는 않는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 친구는 대부분 자녀와 많이 닮은 친구인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자녀와 성향이 다른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그러한 상황은 자녀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행이다. 스마트폰 세상에서 벌어지는 자녀의 비행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설명할 예정이다.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다시 자녀의 <동굴>에서.

인류에게 <동굴>은 어떤 기능이었을까? <동굴>에서는 요리도 했었고, 노래도 불렀으며, 도구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놀이활동까지도 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굴>은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인류에게 동굴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들이 바로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와 동물의 뼛조각 그리고 돌도끼는 물론 동굴 벽화일 것이다. 결국, <동굴>은 생존의 공간이었고 생활문화의 터전이었으며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놀이터였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자녀가 있는 방은 어떨까? 앞서 이야기했던 동굴의 기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없는 자기 방에서 스마트폰 하나 때문에 굳이 나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치 방에서 나오기라도 한다면 자녀는 꽤 불편해진다. 부모에게 트집이라도 잡히지는 않을까? 또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학교생활이니 학원 공부니 이딴 걸 물어보지는 않을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가봐야 딱히 자녀 입장에서 유리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2평도 안 되는 이 동굴에서 조금이라도 평화롭고 자유로운 문화를 즐기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녀에게는 <동굴 생활>이 좋은 이유가 확실해졌다. 그러나 이 공간이 부모로부터 침범을 받게 된다면 자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짜증으로 끝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글쎄요다. 자녀는 침입자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용히 다음 플랜을 준비한다. 더 큰 동굴을 찾는 것. 논리로는 부모를 이길 수 없으니 은밀하게 외진 곳을 기웃거린다. 그것이 바로 자녀의 늦은 귀가로 이어지고, 무단 외출과 단기 가출로 연결되는 불행한 과정을 예고한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의 동굴을 함부로 침입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자녀를 동굴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보다 완벽한 비책이 필요하다.


<단계>를 적용해 보자.

일단 부모님들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하더라도 자녀 방이 아닌 거실에서 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 것은 머리가 이해해도 가슴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제안이 실패하면 역효과는 더 클 것이다. 아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럼 그렇지. 언제까지 가는가 했어."라고. 결국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그동안의 신뢰는 곤두박질을 칠 것이다. 결국 거리는 더 멀어졌다. 이게 아니었는데.


이미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금지하는 것은 정말 교육적일지 고민해 봐야 한다. 또 그 방법이 과연 진정한 효과를 만들 수 있을지를 본다면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부모가 강력한 요구를 했을 때 자녀가 도덕성이 가득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녀가 인정하지 않는 타협은 결국 <거짓말><속임수>를 낳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타협을 한 자녀는 앞에서는 다짐을 보여주지만 뒤에서는 친구들에게 공기계를 구걸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자녀의 서랍과 서랍 사이에는 부모가 모르는 공기계 폰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학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수업을 위해 스마트폰을 제출해야 하는 학생은 선생님께 공기계 폰을 제출하고 실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수업시간에 사용한다. 결국 도덕성이 욕구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자녀의 발달단계 특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단계>를 제안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1단계 목적은 아이가 스마트폰을 하더라도 거실에서 부모가 보고 있는 곳에서 했으면 좋겠다. 자녀에게는 부모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율적 통제>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다음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타협>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여 서로가 원하는 만큼의 적당량을 정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1단계 없이 2단계로 넘어가는 경우는 위험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타협안에는 부모가 함께 해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의 교육이 침투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녀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규범은 왜 자녀만 지켜야 하는가? 자녀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 것을 '억지'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적어도 지금 자녀 세대에게는 절대 억지가 아니고 절대 합리적인 질문이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지극히 정의로운 질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부모들은 자녀와 약속한 시간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후다닥 안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잠그고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자녀에게 필요한 단계 자녀가 어릴수록 효과를 더 발휘한다. 당연히 부모의 영향력 또한 자녀가 어릴수록 빠르고 침투력이 높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많고 떠나서 반드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녀가 진심으로 수용해야 하는 '마음'이다. 이 '수용'이 없으면 자녀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이른 나이에 '거짓말'과 '속임수'를 배울 수 있다. 자녀의 적응력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정리하면, 자녀가 어리다는 핑계로 결코 얼렁뚱땅 해서는 안된다. 명확해야 더 효과적이다. 부모의 권위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권위를 내세워 타협을 진행하는 부모님들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가 갑자기 달라졌어요. 안 하던 거짓말을 하고 부모까지 속이고 있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장은 우리 자녀의 방을 '동굴'로 비유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녀를 동굴로부터 나오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이 방법을 고스란히 선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서 변형도 충분히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자녀의 상태를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절실하지 않을까? 자녀를 동굴에서 나오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자녀가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평등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과 단계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 그래야 다음 단계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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