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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Oct 25. 2019

자녀의 스마트폰 : <사이버 자아>가 존재합니다.

자녀가 스마트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첫 번째 <사이버 자아>

난감합니다.

이번 글부터 자녀의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하는데 그게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 <사이버>라는 용어 자체가 부모님들에게 친숙한 <사회 용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심은 있었느냐 하면 그 또한 그다지 삶을 핑계로 관심조차 가지지 못했던 영역입니다. 게다가 출처 또한 부모님들에게 생소한 분야이니 이걸 어떻게 잘 설명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 안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강의식 글 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제  앞에 부모님들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강연하듯이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겁이다. 이렇게 되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부모님들께서도 가상의 강연장에서 편안하게 착석하고 강연을 듣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글을 통한 <사이버 강연>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너무 고마울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심호흡을 하고 물을 한 모금 걸치고 삐뚤어진 단추를 고친 다음 강연장으로 입장을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먼저 안심시켜 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여기 와 계시는 부모님들의 자녀는 제가 장담하지만 <안전>합니다. 만일 앞으로 자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저를 소송에 걸어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수성>입니다. 여기에 오신 부모님들께서는 자녀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공통의 <감수성>이 존재한다는 거죠.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을까요? 모든 교육은 이러한 교육을 지향하는 <감수성>이 바탕에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다시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의 자녀는 <안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제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라고 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강의를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왕 오셨으니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주시고, 또 수군거리셔도 됩니다. 또 같이 오신 부모님들과 중간중간 편하게 의견도 주고받으시죠. 그러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잠깐 나가셔서 로비에서 작정하고 논쟁을 벌이셔도 됩니다. 사실 제가 원하는 건 강연을 듣고 자극을 받고 의견을 교환을 해서 논쟁까지 벌이는 걸 원하거든요. 그럼 이제 제가 준비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부모님들께 물었습니다.

"학교 폭력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스마트폰을 없애면 됩니다."   


자녀에게도 물었습니다.

"학교 폭력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교를 없애면 돼요"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속내가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처럼 지금 부모에게 당면한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이 <스마트폰>입니다. 즉, <스마트폰>이 자녀의 손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대북 문제>와 <사회 갈등 문제>보다 더 시급한 부모의 최대 당면 과제죠.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애착 현상>을 연상시킬 만큼 부모님들께서 자존심마저 상하실만도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자녀가 엄마의 따뜻한 손과 가슴보다 차갑고도 날 선 <스마트폰>의 허리를 감싸안는 걸 더 선호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강연부터 대체 자녀들이 왜 스마트폰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녀는 왜 이렇게 <스마트폰>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요?

자녀에게 물어봤더니 예상대로 대답은 짧았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자녀의 대답은 짧게 끝나지만 저는 이 문장이 사실 많은 문장의 구절을 생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다른 친구들이 이 시간에 <스마트폰>에 모여들어요. 그러니까 안 들어갈 수가 없죠. <스마트폰>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시간은 너무 재밌어요. 게다가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게임>은 또 얼마나 재밌는데요.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했으면 좋겠어요..."


메신저를 통해 가끔 연락하는 중학생의 인터뷰였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팩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재미와 자극을 좋아하는 자녀 발달단계에서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는 건 현재 <잠자는 거> 말고는 없습니다. 최소한 사용하지 않더라도 내 주머니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하는 소중한 보물인 거죠. <통제> 말인가요? 글쎄요. 아쉽게도 우리가 만들어 낸 문명이지만 우리가 <통제>를 못하는 문명입니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구조적인 생태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분야들이 발을 담그고 있어서 법체계가 경제구조체계와 연결되어 있고, 경제 구조체계가 또 인간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고정적이면서도 순환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실망해서는 안 되겠죠. 왜냐면 우리에게는 <어벤져스>도 감당할 수 없는 부모의 <애정>이 있잖습니까? 우리가 유일하게 기대할 것은 <통제>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부모의 역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자리에 다들 모이신 거고요.


 



그렇다면 이제 조금 더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 보죠.


그럼, 자녀들은 왜 그렇게 <스마트폰>을 좋아할까?

일단 이유를 알기 전에 <스마트폰> 세상에 대해 이해해야 할 <필수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이버 공간>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사이버 공간>의 전제 조건은 <인터넷>입니다. 즉, <스마트폰> 세상은 인터넷이 제공한 초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 세상>을 <사이버 공간>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죠. 결국, 자녀로 하여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터넷> 기능을 제거하면 답은 딱 나옵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인터넷이 없는 <스마트폰>은 그냥 <폰>이 되는 거니까요. 다른 글에서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스마트폰은 폰이 아니라는 주장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에서 핵심적으로 다룰 내용은 어찌 보면 바로 <사이버 공간>에 대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사이버 공간>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인 작용을 일으키는지 함께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

먼저 <사이버 공간>에 대한 <오해>를 수정해야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던져 보죠.


"<사이버 공간>은 <실제 공간>일까요? <가상공간>일까요?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나아가 이 질문의 답을 알면 지금 자녀는 단순하게 <스마트폰>을 들락날락 거리는 일시적 행동이라는 개념에서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거주의 형태라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면 <가상공간>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당연한 답변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 <사이버 공간>의 사전적 의미를 보더라도 <사이버>의 어원이 미국의 '윌리엄 깁슨'이라는 작가가 1984년에 쓴 과학 소설 <뉴로맨서>에서 최초로 등장했고, 인공두뇌학(cybernetics)을 뜻하는 Cyber와 공간을 뜻하는 Space의 합성어로서 현실이 아니라 두뇌 속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우주를 뜻으로 <가상공간>이라고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저는 이 개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2008년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스마트폰>이 출현하면서 우리 삶의 틀 자체를 바꿔 놓기, <이전의 개념>이었다는 거죠. 맞습니다. 제가 동의하는 것은 <사이버 공간>은 자녀들에게 <실제 공간>입니다. 이를 확인하시려면 우리 자녀의 <사이버 공간> 활동 로그를 살펴보면 되는 데 부모 입장에서 사실 자녀의 <사이버 공간>은 <불가침 영역>이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대 분명한 건 우리 자녀가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이 높아진 게 사실이고 특히, 에고(ego), 그러니까 자녀의 실제 <자아> 또한 오프라인에서의 <자아>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아>가 우리 자녀의 <실제 자아>에 가깝다는 겁니다.


여러 사례 중에 한 사례를 골라봤습니다. 참고로 <수지>는 가명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수지>는 평범한 여학생입니다.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또 딱히 지금까지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린 적도 없습니다. 조금 내성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도 <수지>는 선생님께 야단 한 번 맞은 적 없는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기에도 꽤 반듯한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려 노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주도하기보다는 친구들을 잘 따라가는 배려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평범하던 수지가 친구들과의 단체 메신저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라이벌 아이돌 사진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해 일명 <아헤가오> 사진처럼 편집하여 친구들에게 유포를 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상대 아이돌 <팬덤>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신고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과 선생님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겠죠. 또 <수지>의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친구들은 <수지>에 대해 부모와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수지>는 매우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때로는 엉뚱할 정도로 재밌는 친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이제 <수지>의 실제 <자아>는 <오프라인>일까요? <사이버 공간>일까요? 저는 <수지>의 진정한 <자아>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수지>가 진짜 <수지>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이제 우리 자녀가 스마트폰을 열어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면 자녀의 <사이버 자아>에 대한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 정도는 사실 우리 부모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말이죠.  <사이버 자아>는 우리 자녀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는 지를 뜻하는 이상적, 그러니까 자신이 기대하는 <자아>의 본질을 쉽게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전에 없던 새로운 환경이 바로 <스마트폰> 세상이라면. <오프라인> 환경보다는 <사이버 공간>에서 보이는 새로운 <자아>의 모습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것이 자기의 희망 끝 지점인 <자기실현>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녀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할 수 없는, 하더라도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반면에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러한 비용이 모두가 무료라는 자체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을 열면 우리 자녀들은 항상 그림과 글자를 항상 바쁘게 짜 맞추고, 만들고, 실험하곤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지금의 자녀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자아>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도구죠. 쉽게 말해, 청소년기 발달단계를 지나고 있는 자녀들은 자신을 탐색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보니 <오프라인>에서의 탐색과정을 <사이버 공간>으로 장소를 이동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이버 사춘기>라는 연구 주제가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다른 자아보다 사이버 자아를 통해 시간을 투자해서 자신을 탐색하고 자신이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금 우리 자녀들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좀 더 확대해서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유명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함께 꿈꾸고 있죠.    




그럼, <가상공간>이었던 <사이버 공간>은 어떻게 해서 <실제 공간>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이버 공간>이 지금 자녀 생각에는 <초자유 초민주주의 사이버 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자녀가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나라>인 거죠. 말 그대로 이 <사이버 공간>에는 <초자유>가 있고 <초민주적>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보니까 자유가 있지만 통제는 없고, 민주적이긴 하지만 제도는 없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이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자녀들은 이러한 <위험성>이 자기 자신에게는 해당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미한 피해 정도는 주어진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위험성은 감당해야 한다고 나름의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꽤 위험한 <사고방식>인 거죠. 왜냐하면 이 <위험성>은 구조를 알고 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일단 <초자유>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온라인 탈억제 효과> 현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말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어려운 용어는 아닙니다. 쉽게 말해 <사이버 공간>에는 저 같은 경찰도 부모도 선생님과 같은 행동을 통제해주는 기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녀들은 억제가 되지 않고 자유를 넘어 방종을 부릴 정도로 자유에 취해서 활동하고 있죠. 자세히 봐주세요. 자녀가 사이버 공간에서 하는 행동과 생각에 잘못되었다고 교육을 시켜주는 기능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자녀 입장에서 보며 이만큼 완벽한 세상은 없는 거죠. 쉽게 설명하면 부모의 눈치와 잔소리가 있을까요?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해서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이 있을까요? 그저 쥐어짜고 또 쥐어 짜서 굳이 있다면 사이버 시민들의 <비난>입니다. 비난은 교육이 될 수 없고 수위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대접을 못받죠. 그래서 <초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사실 <칭찬> 아니면 <비난>이라는 원색적인 이분법으로 나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당연합니다. 갈등구조를 학습시키는 옳지 못한 교육법이 제공됩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틀리면 속으로 배척하고 공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초민주>입니다.

<사이버 공간>은 철저하게 <수평적 관계>입니다. 이 공간은 <권력>도 없고, <권위>도 없고 <지시>나 <금지>는 더더욱 없습니다. 정부가 제공한 공익 광고는 영업용 광고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콘텐츠조차도 자녀의 <감수성>에 맞추지 못하다보니 눈길마저도 가지 않습니다. <사이버 공간>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평등>과 <정의>가 구조화된 세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인 학교와 가정에서 늘 억압받고 통제받은 세상을 살다가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면 나오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초민주> 다른 말로 말하면 <초배려>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을 하면 일단 <사이버 시민>은 배려를 해줍니다. 문장과 그림에서 누가 봐도 초등학생이고 중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임에도 <사이버 시민>은 배려하죠. 왜냐하면 비난해서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없고 초딩,중딩 수준의 막무가내식 공격을 받으면 대처하기도 좀 난감합니다. 그렇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이러한 배려가 자신이 마치 고학년이나 성인처럼 성숙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수준을 잘못 해석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러한 현상은 결국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도 서스럼없이 다가가고 수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공화국>입니다.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나라를 말하듯이 <사이버 공간>은 철저하게 <커뮤니티>라는 생활양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족의 개념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라지고 <커뮤니티>가 마치 <가족> 같은 개념을 대체하고 있죠.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절대 <홀로>가 없습니다. 모든 자녀는 자기 취향에 맞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죠. 활동을 하든 하지 않든 일단 소속감을 좋아하는 자녀에게는 이 <커뮤니티> 자체가 <완벽한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소속감을 가지려면 상대적으로 사회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또 시간적으로도 오래 걸리고 또 소속 안에서도 내 위치를 확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보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힘을 앞세웠다가는 <극혐>으로 낙인찍힐 확률이 크니까요.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철저하게 <동의>와 <설득>으로 상대를 포함합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상대의 그런 모습이 매우 예의 바르고 자신이 마치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착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이제 부모로서 반드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지점>을 알았습니다. 일단 <사이버 공간>이 <가상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를 파악하는 아주 중요한 시작점이거든요. 여기에 <사이버 공간>에는 자녀의 <사이버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 <사이버 공간>은 <온라인 탈억제 효과> 현상이 있어서 <통제>와 <눈치>라는 일체의 경계선도 존재하지 않는 <위헌한 공간>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사이버 공간>은 터치 한 번이면 <여권> 없이도 세계 어느 나라를 갈 수 있고, 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외국어 능력이 없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초 연결망 간편 시대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마냥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자녀를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녀가 <스마트폰> 사용한다면 자녀에게 기본적인 <규범>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스마트폰>을 할 때는 내가 올리는 글이나 표현 또는 대화를 통해 만나는 사람과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각종 무료 콘텐츠에 대하여 최소한의 <조심성> 과 <무거운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심어줘야 합니다.




잠깐 쉬었다가 다음 시간에는 자녀가 스마트폰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두 번째로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키는 사이버 공간>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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