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류장의 흔적> 3화
오늘은 정류장들이 자꾸만 도망가는 것 같다. 버스의 속도와 정류장의 속도가 같아 따라잡을 수 없는 느낌이다. 24번 버스의 3번째 운행, 정류장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걱정과 기대를 함께 느낀다. 그녀의 일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동시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자체가 기대를 갖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는 줄어들고 걱정은 높아진다. 결론을 알 수 없고 각종 상상만 하게 되는 이 시간이 그는 가장 싫다. 그는 그녀를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보고 그녀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하루를 완전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6개월 전 처음 본 이후 처음으로 예외가 생긴 것이다. 예외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의 상상력은 주로 좋지 않은 쪽으로 활용된다.
4번째 운행을 하기 전 그는 어젯밤 자신이 남겼던 그림을 지금이라도 지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 그녀의 환상의 방향을 잘못 생각한 것 같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미워진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지금 그가 그것을 지우고 시간에 맞춰 4번째 운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세상의 모든 눈사람을 없애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하필 또 그날의 4번째 24번 버스에는 승객이 없다. 그는 자신의 상상을 쉬게 할 수가 없다. 버스 안의 너무나 일상적인 소음, 평소와 똑같은 한산한 도로, 모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그의 상상을 돕는다. 그녀의 정류장을 3개 앞두고 그는 거의 화가 나 있다. 그녀가 하는 그 한심한 행동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지고, 그것에 신경을 쓰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기 자신이 그 무엇보다 혐오스럽다. 그녀의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24번 버스에는 단 한 명의 승객도 탑승하지 않는다. 그는 급기야 이것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른다. 아니 그러한 바람에 이른다.
그의 상상에 결론을 내려줄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의 정류장에 도착한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거기에 있다. 그는 그녀의 표정이 두려워 일부로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그냥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버릴까도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그녀 외에 다른 승객 한 명도 그 정류장에 있다. 다른 승객이 먼저 버스에 승차하고, 뒤를 이어 그녀가 올라온다. 그녀는 버스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를 놀라게 한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그에게 인사한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단 다섯 글자뿐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말투가 이 마을의 말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힘겹게 쥐어짜 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지 않은 톤의 침착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것을 예상하지 못한 그는 어색한 목례만을 그녀에게 건넨다. 평소 같으면 자연스럽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을 그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어색함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 몸짓, 목소리가 전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녀의 모습 중 가장 밝은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그가 한 상상들은 전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녀의 밝음을 버스 안의 다른 한 명의 승객도 알아차린 듯하다. 다른 한 명의 승객은 마을의 할머니이다. 그는 그녀가 버스에 없을 때 마을의 노인들이 그녀에 관해서 수군거리는 것을 여러 번 들었었다. 노인 집단 속 툭 튀어나온 어린 여성은 속수무책으로 대화의 주제에 오르게 된다. 마을 집단의 말속에서 그녀는 과부도 되어있었고, 정신 나간 년도 되어있었고, 창녀도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반복해서 듣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어떻게 생각할지 까지는 정해주지 못하더라도 무엇을 생각할지는 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묘사하는 방향은 그녀의 불행한 삶을 예상하는, 혹은 기대하는 단 한 방향뿐이었다. 그 또한 그런 말을 원치 않은 방법, 엿듣기를 통해 여러 번 듣게 되면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영향이 믿음의 방향으로 발현되지는 않았다. 그는 그러한 말들이 대부분 참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 자신 가족에 대한 말을 통해서 이전부터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그는 매일 밤 그녀의 그림들을 보며 그런 소문이 진실일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그녀에 대한 소문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믿음으로 발전시켜 왔다.
마을의 노인들은 그런 식의 뒷말들은 무성히 해왔지만,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 용기는 갖지 못했었다. 그녀의 평소 표정이 소통을 사전에 차단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그녀의 밝음을 본 할머니는 드디어 그 용기를 갖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할머니는 그녀의 좋은 일에 관해서 묻는다. 그 또한 부끄러운 긴장감을 갖고 그녀의 답을 기다린다. 그녀는 잠시 동안 할머니를 보며 침묵한다. 할머니가 그녀의 침묵에 당황하며 시선을 떼려 할 때 그녀가 오래 준비한 듯한 말을 꺼낸다.
“정류장에 그림 보셨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되물음에 할머니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녀도 할머니의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잠시 할머니를 향하던 그녀의 시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방향을 바꿔 창밖을 향한다. 그녀는 여전히 빛 나는 밝음을 내뿜고 있다.
이제 정류장들은 그의 버스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다.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버스에서 내렸고, 한참 동안 그와 그녀 둘만이 버스에 있는 시간이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떨림을 뒤쪽에 있는 그녀에게 혹여나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정류장에 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 스스로의 밝음을 깨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핑계를 대며 자신의 부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녀는 매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창에 바짝 붙어 정류장을 열심히 살핀다. 그리고 그 정류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약간의 실망감이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다. 그는 이제 모든 정류장에 그림을 그리지 않은 자신이 밉다. 그러나 실망감은 말 그대로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고 그녀는 그 특유의 밝음을 종점에서 하차할 때까지 잃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한다. 그는 자신의 오늘 밤이 매우 길어지리라는 것을 기분 좋게 예감한다.
그는 밤이 되기 전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으로 향한다. 오늘 밤을 위한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다. 학교 앞 문구사, 평소 그가 가장 피하는 곳이다. 문구사의 사장님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환상에 처음 젖어들었을 때 그는 거의 매일 그곳을 찾아갔었다. 사장님은 어린 그의 환상을 가장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었다. 그는 사장님 앞에서 자신이 정말로 어른 카레이서가 된 것처럼 느꼈다. 그가 중, 고등학교로 갈 나이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환상에 틈이 생긴다 싶을 때는 항상 문구사를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그는 틈을 메울 수 있었고, 완전한 환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즉, 이 문구사는 현재의 그를 가장 부끄럽게 만드는 곳이다.
이 마을에 문구사가 이곳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그는 왜 굳이 이곳을 찾아왔을까. 그는 스스로 더 이상 그런 부끄러움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는 이 문구사가 특별한 곳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척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그가 그런 증명을 하려 하는가. 그는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러한 과거의 부끄러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현재의 중요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을, 그는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약 5년 만에 문구사 문을 연다. 사장님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가장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는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다. 따라서 물감은 무엇이 있는지, 붓을 써야 하는지, 펜을 써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너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다. 최소한의 필요한 도구를 사려한다. 이 고민을 그는 증명에 활용하고자 한다. 사장님을 나지막이 부른다. 사장님은 문구사와 연결된 작은 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나온다. 사장님은 그의 얼굴을 보고 기분 좋은 놀라움을 보여준다. 예전에 그를 부르던 별명, f1 선수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려다 멈칫하고 웃음 짓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반가움을 표하고 그림 도구에 관해 묻는다. 사장님 또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선택을 도와준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불편함도 오고 가지 않는다. 그저 옛날의 기대가 없을 뿐이다. 그는 그림용 펜 몇 개와 색연필 세트를 고른다.
계산을 하며 그는 굳이 자신이 지금 마을버스를 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떠한 노선의 버스를 운전하는지, 얼마 뒤에는 시내버스로 옮겨 이 마을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알린다. 사장님은 가만히 미소를 띠고 그의 말을 듣는다. 그에게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잘될 것이라는 평범한 격려만을 그에게 남길뿐이다. 그러나 그는 미소 뒤에 숨어있는 사장님의 실망을 느낀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 실망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사장님의 실망이 그를 향하지 않고, 사장님 자신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그는 받는다.
그는 한 정류장에서 30분째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고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3개의 정류장에 그림을 그렸고, 앞으로 그것의 5배가 넘는 정류장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벌써 스스로의 예술적 감각이 바닥남을 느끼고 있다. 더군다나 이곳에 있는 그녀의 그림은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이런 것을 보고 현대예술이라고 하는지, 이 그림은 현실의 무언가를 따라 그린 그림 같지가 않다. 그러한 그림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그나마 그가 두 번째 그림이 그려지기 전을 보았기 때문에 두 개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두 개의 그림이 아닌 하나의 그림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두 그림은 연결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그는 맥락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다른 요소, 그림을 추가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는 것에 지친 그는 슬슬 핑계를 찾고 있다.
‘그녀는 하루에 단 한 정류장에만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하룻밤만에 모든 정류장에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이것은 그녀의 원래 의도에 어긋난다.’
그의 핑계는 그녀의 목적을 추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그림에 무언가 추가한 것을 보았을 때 좋아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람들이 함께 정류장에 그림을 그리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것을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본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유명해져서 혜성처럼 나타난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그는 자신만의 상상도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다 생각해 조용히 상상을 한다. 그는 그녀를 돕고 싶다. 그것의 이유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피하려 한다. 그 이유를 그는 알고 싶지 않고,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음을 걱정한다.
그림에의 동참, 그림을 향한 관심, 둘 중 무엇이 그녀의 목적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는 둘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녀의 그림 옆에 더 큰, 존재감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생각을 끝낸 그는 펜을 집어 들고 자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언가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