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어떤 차를 받았나요?

by Taylogue

나에게는 연년생의 동생이 있다.

거의 시간차(?) 없이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생김새부터 시작해 성격도, 기질도, 성향도, 특기도 모두 다른 우리.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생겨 '그래도 핏줄은 핏줄인가 보다' 하게 되었지만,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듣다 보면 서로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정말 '천성'이라는 게 있는 걸까 고민이 될 정도로.


부모에게 태어날 아이가 랜덤(?)인 것처럼,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자신의 몸과 마음은 랜덤이다.

어떤 영혼을 어떤 그릇에 담은 채 태어나게 될지 모르니,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 회귀/환생물처럼 '눈 떠 보니 낯선 몸'인 거다.


나는 종종,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을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랜덤으로 차를 한 대씩 받아 평생 굴리는 일'

에 비유하곤 한다.


부모의 재력을 고려해 '비싸고 좋은 차'를 받았느냐 아니냐 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용도와 기능'에 대한 이야기로, 내가 받는 차가 화물용 트럭일 수도, 버스일 수도, 택시일 수도 있고, 승합차일 수도, 스포츠카일 수도, 유행하는 전기자동차나 자율주행자동차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내 차가 낯설었다.


내 차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차와도 생김새가 달랐다. 차라리 우주선과 비슷한 점이 더 많다고 하면 그나마 이해가 쉬울까? 계기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어만이 가득하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아무렇지 않게 주인을 태우고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는 다른 차들과 달리 (진짜 우주선도 아닌 주제에) 어찌나 조작법이 복잡한지,

아무리 뜯어봐도 시동은 어떻게 걸고, 기어는 어떻게 넣는 건지, 엑셀과 브레이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낯선 레버와 버튼들. 툭하면 엔진을 타고 들려오는 괴소음.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에어백이며 보닛에서 올라오는 기묘한 연기.

사방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다른 차량들 때문에 세우지도 마음 놓고 달리지도 못한 채 운전석에 갇혀 공포에 떨던 나날들.




단언컨대, '왜 포르셰가 아니냐'라고 원망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차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평범하게 도로를 달리며 여행을 하고, 연료가 떨어지면 주유소에 들러 '가득이요'를 외치다가 휴게소 주차장에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그런 차. 이렇게 시동조차 마음대로 걸고 끌 수 없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괴상망측한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내게 차를 선물한 이들조차 '무슨 차가 소음이 이렇게 심해?', '얌전히 좀 운전할 수 없어?', '하여튼 유별나다니까.'라며 그렇지 않아도 이곳저곳 부딪쳐 만신창이인 내 차를 다시 툭툭 쳐대는 통에, 유별나고 소란스럽고 다루기 까다로운 내 차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 차를 미워하고 상처 입혔다.

그게 내 몸이고 마음임을 알면서도.




"이건 뭐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습관처럼 계기판을 훑으며 글자 비슷한 게 뭐라도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여태껏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레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뭔지도 모르는 버튼을 아무렇게나 눌러보다 감전이 되기도 하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 병원 신세를 지는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그야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 된 나는 밑져야 본전(은 사실 아니지만)이라 생각하며 그냥 레버를 당겼다.


"어?"


천덕꾸러기 고철덩어리 위로 우산이 펼쳐지더니 빗물에 일렁이던 앞유리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뽀송해졌다. 와이퍼 켜는 방법을 끝끝내 찾지 못해 앞유리는 늘 걸레로 직접 물기를 제거해야 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중얼거리며 레버를 조금 더 당기자 이번에는 냉골 같던 차 안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뭐야??? 왜 따뜻해져???"


냉기에 바싹 말라 있던 얼굴부터 수족냉증으로 늘 꽁꽁 얼어있는 발끝까지 해동이 되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온기가 느껴졌다. 혹시 이건, 전설 속에만 전해지던 히터라는 것인가? 말도 안 돼. 내 차에 히터라는 게 있었다니...... 충격에 머리를 감싸 쥐다가 실수로 팔꿈치로 운전석 창문을 쳤다. 계기판에 낯선 팝업창이 뜨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율주행모드가 가동됩니다.」


S자 도로를 달리는데도 워낙 뻑뻑해서 양손으로 돌려도 간신히 돌아가던 핸들이 귀신에 들린 것처럼 스르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고철덩어리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 건에 대하여-


THE END.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렇다.


사실 내가 받은 차는, 엄청난 기능이 숨겨져 있지만 그만큼 구조도, 조작법도 다른, 뭐 이를테면 '긁지 않은 고철'이었던 거다.


운전을 배울 때는 아무래도 가장 일반적인 구조의 차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초심자가 운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운전법을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그 어떤 차와도 비견할 수 없을 특별한 기능들을 탑재한 차.

차를 선물한 나의 부모나 세상조차도 조작법을 알지 못한, 그래서 그 주인을 오래도록 괴롭히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주인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초특급리미티드에디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인생이 차라면,

그래서 그 차를 우리의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한다면,

나는 정말로 이상한 차를 선물 받았다.


내 차가 마음에 들지 않고 다루기 어려운데 설명서도 없으니, 피하고 탓하고 심지어는 저주하기까지 한 나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내 차의 운전석에 앉았다.


계기판에 적힌 외계어가 사실은 희랍어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의미 없이 박혀있는 줄로만 알았던 레버와 버튼들이 일정한 순서로 당기고 눌러야만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내 차의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보닛에서 다소간 연기가 나고, 시도 때도 없이 에어백이 터지는 답 없는 차라고 해도,

툭하면 불이 붙어 터지고 부서져서 상처투성이가 된다고 해도,

그래도 끝까지 그 운전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차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거라고 믿었다.



내 차가 못나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에게마저 사랑받지 못할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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