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뒤에 찾아온 괴리감.
휴가를 다녀온 뒤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고, 나도 분명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인데 이제껏 너무 불행하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 가서 뭐가 제일 좋았냐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힘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일 안 했던 것.
휴가 가서도 좀처럼 "일, 직장"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 업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진짜 그 말 그대로 추상적 의미로서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루 걸러 하루 당직 서며, 쉬는 날에는 집에서 은신하며 체력을 회복하는데 세월을 다 보냈던지라 대략 7개월 만에 갇혀있던 우물에서 나와 제대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휴가 기간이었다. 휴가 와서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깊은 곳에 있던 무의식은 잊고 있지 않았는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사람들의 직장, 밥벌이 수단에만 관심이 갔다. 이렇게 세상에는 다양한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많은 밥벌이 수단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불행해하면서 현재 직업을 유지하는 게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된 직장, 고소득 등등을 외치는 세상이지만, 관광지라 그런지 "안정"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조금 애매한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자영업자들이 안정되지 않은 직장이라고 비하하려는 의도는 일절 없고 부모님 중 한 분은 자영업, 한 분은 회사원이셔서 자영업은 수입이 높다가도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고, 회사원은 적더라도 일정한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는 어쩌면 조금 편협하다 할 수 있는 개인적인 가계 데이터가 있다.) 세상을 조금만 둘러봐도 그런 분이 너무 많았다. 너무너무. 그러니깐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안정된 수익을 얻겠다는 마음 하나로 내가 이 일이 지속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안정된 수익이니 어쩌니 외쳐도 다들 저렇게 사는 것 같은데. 애초에 안정된 수익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것조차 허상이고, 나는 허상을 쫓아가면서 헥헥대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엔 나도 자영업자랑 다르지 않은데.
안정된 수익이라는 표현을 붙이기 어려운 일자리에 일하는 사람들도 나보다는 행복해 보였다. 함부로 가늠할 바는 아니지만, 왠지 다들 나보다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휴가를 복귀한 첫날부터 체력이, 업무가 과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일을 하는 행위 자체에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휴가 때는 나름 행복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한순간에 불행해질 수가 있나. 휴가를 안 갔다 왔으면 이런 생각조차 안 했겠지. 이래서 노예들에게 휴가를 안 주나. 따위 생각을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흘려보내다가 잠깐의 휴가조차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스스로에 두려움을 느꼈다.
좀 더 내 마음을 파고들자면 이 일이라서 현타가 오는 것 같지만, 사실 다른 일을 안 해봤기 때문에, 단지 "이 일"이기 때문에 현타가 드는 건지, 아니면 "일을 한다는 행위"자체가 끔찍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어서 마음이 더 불안했다. 다들 이렇게 쳇바퀴처럼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안정된 수익은 있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견디고 견디다가, 가끔 주어진 휴가에(이것조차도 눈치 보거나 혹은 남은 연차를 돈으로 환급하지 않으려는 기업의 압박에 쫓기듯이 사용해야 한다.) 남들이 인스타에 게재한 아름다운 곳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을 나도 쥐어보고 싶어서 있는 짬 없는 짬 활용해서 계획을 세우고 연차를 빡빡히 써서 떠났다가 짧은 한여름밤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걸까. 그리고 다시 시작된 쳇바퀴같은 삶에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잔잔한 우울을 불행하다는 생각 사이사이에 끼워 넣으면서, 그때 느꼈던 행복감과 현재 느껴지는 불행감에 괴리감에 이전보다 끔찍해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나만 이 일에서 도무지 가치를 찾지 못해서 혼자 유독 "이 일"에 대해 끔찍함을 느끼며 가끔 짬이 나서 휴가를 다녀와서도 그때의 행복감과 불행감의 괴리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는 휴가를 무언가를 느끼는데 쓰지 않는 게 좋겠다. 현상 유지를 위해 골방에 갇혀서 체력을 비축하거나 넷플릭스나 보는 게 낫겠다'라는 멍청한 생각에 빠지고 마는 걸까.
그러니깐 다시 말하자면 무언가로 밥벌이로 한다는 게 만인 공통의 유구한 불행인지, 아니면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설령 만인이 직업에서 불행을 느끼는 게 보편적인 상황이라 해도 내가 느끼는 정도가 해당직업과 나의 상성이 좋지 않아서 남들보다 유독 심한지 가늠이 안된다.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지 않은 사실이며, 나는 좀 더 삶의 가치 및 의지라는 영역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전자일 경우 모두가 이 불행한 세상에 살고 있고, 내가 직업을 바꾼다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고, 후자의 경우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직업과 맞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어 불안감이 든다. 어느 쪽이든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지만, 제발 전자가 아니기만을 바란다. 남은 50년의 인생이 뭘 해도 우울이 스민 불행의 페이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남은 페이지를 넘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바로 마지막 장으로 향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몇 날 며칠 휴가 후의 여파로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밖에서 붕어빵을 팔아도 이것보다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한다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붕어빵을 팔고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 거다. 전문직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초보 전문직이라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못 견디게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고 멍하고 삶의 가치와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나는 이 일을 해낼 역량이 부족한 걸까. 나는 전문직을 감당할 그릇이 아닌 건지.
나도 분명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번 휴가로 다시금 되새겼다. 나도 이렇게 불행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너무 오랜 시간 이 감정에 젖어 있었지만, 이 감정선을 유지했지만 이게 내 최선은 아니다. 아니 하다못해 보통도 아니다. 나는 지금 우울해하고 있고 불행해하고 있다. 내 업무환경이 지금보다 개선된다면 아마 부정적인 감정의 정도가 조금 개선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을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라고 모두가 누누이 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익히 세상에 알려진 모두가 공통으로 말하는 행복을 위한 요소와 불행을 위한 요소를 쟁취하고 피해 가려도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모든 게 잘 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멍한 정신으로 잠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친구가 올린 글을 봤다. 워낙에 삶에 있어서 진취적이고 커리어적으로 목표가 뚜렷한 친구였는데, 이것저것 리프레쉬를 위해 세계일주를 올리겠다는 글을 올린 것을 봤다. 그중에 내 맘을 흔들 글귀는 "이렇게 내 청춘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해요."라는 글이었다.
아... 나를 끝없게 불안하게 하던 것 중 하나. 나의 청춘은 다시 돌아오질 않은 신체적으로 육체적으로 절정에 있을 건강할 시간일 텐데 나는 그저 흘려보냈다는 생각. 후회. 아쉬움. 나는 장장 7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불안감.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무얼 해야 할까. 우울한 인생에 가끔 지나치게 자극적인 행복이라는 조미료를 쳐서 그 자극적인 맛에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인생에 가끔 슬픔이라는 조미료를 쳐서 미묘한 맛이네 하고 넘길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