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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22.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13

강릉에서 열세 번째 날


형제(兄弟)




평소보다는 조금 불편하지만 싫지 않은 기분

평소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는 집안 가득한 아침의 활력

닫힌 방문조차 넘어 들어와 날 기분 좋게 해주는 웃음소리들

내가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처음으로 느낀 것들이다.

어젯밤 늦게 처형(妻兄)이 우리 강릉집 손님으로 와줬고, 손님은 선물로 위와 같이 평소와 다른 새로운 아침 분위기를 우리에게 선사해 줬다.



오전에 강릉 초당동에 위치한 '아르떼 뮤지엄'에 방문했다. 둘째 날 방문한 아쿠아리움 바로 옆에 위치해있고, 강릉집에서 아주 가깝지만 따로 가볼 생각을 하지 않던 곳이다.

오전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도착했음에도 주말이라 그런지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아르떼 뮤지엄은 '미디어아트'라는 생소한 작품들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시설이다.

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예술 장르를 내가 느낀 대로 설명하자면 영상과 음향, 향기와 공간 설계 등의 수단과 장치를 이용해 관람객들의 감각을 복합적으로 사로잡는 작품들인 것 같다. 이렇게 설명하려고 노력해 보니 비단 '미디어아트'라는 단어가 아니라 어떤 단어로도 달리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전시관에 들어서서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자 꽃향기가 먼저 느껴졌다. 곧이어 나타난 장막을 걷어내고 들어서자 거대한 공간을 가득 메운 수만 송이의 꽃들이 나타났다. 아스라이 보여서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꽃들과 진한 향기, 곳곳에 설치된 대형 거울들이 나의 시각과 공간 감각을 왜곡하면서 공간은 더욱더 거대하게 느껴졌고, 마치 깨어있는 상태로 꿈속에 들어와 작은 우주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들어선 방은 조명들이 가득했고 벽면에는 대형 거울들로 죽 에워싸여 있었다. 암전과 명전 상태가 번복되며 공간은 마치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변했고, 우리는 별이 총총히 박혀 있는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이외에도 강릉 해변에 앉아 발끝으로 해변을 느끼는 기분이 드는 듯한 작품과 소위 인생샷을 남기기 좋은 작품들도 많았다.




처형 옆에서 아내가 웃고 있다. 아내는 지금 이 여행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도 언니와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더욱 행복한 모양이다. 형제의 존재에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덕분에 문득 나도 동생 생각이 난다.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형제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차갑고 삭막한 세상 속에서 내가 상처 입거나 약해졌을 때 어딘가에 내 형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롭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와 싸우며 크고, 즐겁게 놀기도 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피붙이의 존재.


결혼하고 일 년 정도 지나고 아내와 강원도 로드트립을 갔을 때, 아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던 일이 기억난다.

내가 앞서고 아내가 뒤에서 따라오며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었고,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 봤을 때 도로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았었다. 정신없이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아내에게 달려가 구급차를 타고 강릉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는 외상성 뇌출혈로 인해 24시간 동안 의식이 없었고, 나는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을 처절하게 느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의 경계에 서있는 동안 옆에서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던 그때, 나는 완전하게 무력했고 분주한 병원 복도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나는 동생에게 연락했다.

물론 동생이 와준다고 해도 그 당시 상황을 바꾸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동생을 불렀다.

생사의 경계 위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누워있는 아내를 혼자 지키고 서있기에는 그 공포와 외로움이 너무 거대해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섭고 외로워서 동생에게 연락했고 동생은 즉시 3시간 거리를 운전해 달려왔다.


병실에 들어온 동생의 얼굴을 봤을 때, 두려움과 외로움에 벌벌 떨던 내 마음이 동생의 존재에 기대어 위로받는 것을 느꼈다.

형제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내는 자연 치유되었고, 나는 아직도 그날 느꼈던 형제의 존재가 주는 커다란 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세상은 공감과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말라붙어 서로를 혐오하는 곳이다.

불행한 사고로 허망하게 가족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욕지거리 나올 만큼 차가운 세상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달려와 마음 기댈 곳을 내주는 형제가 있다.

세상은 결국 이런 형제들과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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