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_다섯 번째 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
아침에 딸아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변 따라 산책 한 번 하고, 이후론 집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쉬는 것. 딸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Bach 피아노 곡*이나 들으며 책 좀 읽는 것. 그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행이다. 나는 결국엔 강릉 살이를 끝내고 답답하도록 지루한 일상이 기다리는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해변만 다섯 군데, 각종 식당과 카페들, 가볼 만한 곳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한 달을 지낸다고 해도 다 가보지 못할 곳들이 지천에 있었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오후 4시, 뭘 시작해도 늦지 않은 시간에 무거운 몸뚱이를 억지로 밀어내며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강릉 중앙시장은 꽤 큰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시장 초입부터 즐비한 관광객들의 얼굴은 기대와 흥분으로 빛이 난다.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탄 가게 앞에는 벌써 기다란 줄이 생겼고, 이 전열을 만족스러운 듯 가다듬는 사장님의 쾌활한 목소리가 바로 옆 텅 빈 가게와 식은 음식들을 어두운 표정으로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와 대조를 이룬다.
중앙시장 내부는 온갖 가게들이 만들어 내는 불빛과 이제 막 강릉에 도착하여 시장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터질듯한 에너지로 가득 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어서 시장 골목골목 이미 다닌 곳을 빙빙 돌고 있다.
분명 집에서 쉬고 싶다는 굴뚝같은 마음을 이겨내고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시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훨씬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 모습은 마치 주말에 억지로 아웃렛에 나와 시간을 죽이고 있는 부천에서의 모습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결국 분식점에서 대충 저녁을 때운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서 좀 푹 쉴 걸 그랬어"라는 후회를 했다.
강릉 한달살기 5일 차.
이것저것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그때그때 정말 하고 싶은 것
하나씩만 하면서,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자.
오늘 얻은 교훈이다.
* Bach, Minuet in g minor, BWV Anh 115,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