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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05.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6

강릉에서_여섯 번째 날

회복




아무도 없는 해변 위 모래사장에 서서 고요함 너머로 유일하게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매일 아침 듣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바닷가 마을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강릉 주민으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말이다.


이른 아침 아름답고도 쓸쓸한 고요함이 지나가고, 시간이 갈수록 해변에는 삼삼오오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가족단위의 사람들, 친구들, 연인들은 차에서 내리며 본 바다의 첫인상에 탄성을 지르고, 얼굴에는 하나같이 이제 막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황홀한 표정이 가득하다.

 

나의 바다와 날씨에 보내는 그들의 찬사에 뿌듯함이 마음에 가득해진다.






강릉집 앞에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초당미소'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차가운 겨울 저녁거리를 걷다 보면 이 파스텔 톤의 베이지색 벽과 나무 문이 달린 깜찍한 가게의 창문으로 노란 불빛이 따뜻하게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식은 내가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일본 가정식 음식 같은 정갈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식사를 하며 분주하게 요리를 하는 남자 사장님과 주문을 받는 여자 사장님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이는 대충 우리와 같은 30대 초 중반으로 보인다. 손님들에게 모두 친절하게 인사하는 그들은 아마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겠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 괜히 궁금해지고 말을 걸어보고 싶다. 몇 번 더 식사를 하러 와야지. 그리고 친해지면, 그때 한번 말을 걸어봐야지.   



식사를 마치고 야식으로 먹을 통닭을 한 마리 사서 집에 가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에는 밝은 보름달이 걸려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구나.



달빛은 정말 밝고, 또 차갑다.

한옥의 기와집 위에 떠있는 시린 달빛과 시골 교회탑 위 빨간 십자가 불빛이 아름답다.



자유가 선물해 주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강릉집에 온 이래로 내가 새롭게 발견한 모든 아름다움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 내 딸아이는 언제나 웃고 있다. 바다와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살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도 늘 있다.

다만, 물질주의와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와 함께 뛰며 인생을 즐길 자유를 잃어버렸고, 아름다운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나 보다.


이제 다시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가 잃어버린 자유,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이곳 강릉에서 다시 찾아가고 있다.


역시 강릉에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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