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선배 김세평> 제2부 - 04 배우려는 직장인

[직장생활 추천도서] <이어령, 80년 생각>

by 책장인 김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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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 04 배우려는 직장인


“세평아, 미안한데 이번 우리 회사 가스배관 공사를 네가 좀 맡아줘야겠다.”


“네?! 팀장님!! 저보고 가스배관 공사를 맡아서 진행하라고요? 가스배관은 제 전공도 아니에요!”


“나도 아는데 지금 당장 직원이 없어 어쩔 수 없어. 미안하다. 네가 이번에 고생 좀 해라.”


“팀장님!!”


어느 날 팀장님이 대뜸 나를 부르시더니, 나보고 우리 회사에서 관리하는 건물에 가스보일러를 설치하기 위한 가스배관 설치공사 총괄을 맡기셨다. 네? 가, 가스배관이요? 팀장님의 지시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나는 가스배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니, 가스배관 공사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은 전공자를 시켜야지 이런 일을 대체 왜 나를······.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팀장님께 못하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그러나 팀장님은 회사에 직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면서 결국 내게 가스배관 설치공사 총괄을 맡기셨다.


그렇게 시작된 가스배관설치 공사. 나는 공사를 맡길 업체를 수소문하다 어느 공사업체의 실장님과 연락이 닿았고, 해당 공사업체와 함께 가스배관설치 공사를 진행했다.


“세평 씨, 처리해주실 서류들 가지고 왔어요.”


“실장님, 감사합니다. 음······? 이게 도대체 무슨 말들이지?”


실장님이 가지고 온 공사와 관련된 서류들을 읽던 나는 당황했다. 서류에 적힌 가스배관 공사와 관련 용어들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말에 쓰여 있는데 나는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큰일이다. 가스배관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중요한 공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에고.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도 가스배관 설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장에 나와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솔직히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저 한숨만 푹 쉬고 있는데······ 마침 그가 내 앞에 등장했다.



낯선배: 어이, 잘 지냈어? 늘 볼 때마다 표정이 좋지 않아.


김세평: 에휴······. 오늘도 제 표정이 좋지 않은가 보죠? 아무튼 낯선배님 오랜만입니다.


낯선배: 그래. 오랜만이야. 요즘 가스배관 설치공사 때문에 힘들지?


김세평: 어? 제가 가스배관 설치공사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낯선배: 다 아는 수가 있지. 흠흠, 이때 진짜 고생 많았었는데······.


김세평: 그렇다면 혹시 낯선배님도 우리회사 가스배관 설치공사를 하신 적이 있으시군요? 혹시 가스배관 관련해서 전공하셨어요?


낯선배: 아니야. 전공한 적 없어.


김세평: 헉. 그럼 저랑 같은 상황이셨군요.


낯선배: 뭐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실장님한테 시방서는 잘 받았고?


김세평: 에? 아아. 시방서 하나 받은 거 있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낯선배: 어. 잠깐 보여줘 봐. 음······. 와우! 진짜 오랜만에 읽어보는 시방서군. 하하하. 그러고 보니 나 처음에 실장님이 시방서 가지고 오셨다고 했을 때, 나는 또 나한테 시방 뭐 욕하는 거로 잘못 알아들어서 실장님이 나한테 욕하는 줄 알았었어. 아오, 그때 얼마나 창피했던지!


김세평: 아, 진짜요? 낯선배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그렇게 오해했다가 창피해서 혼났습니다.


낯선배: 그래. 아무튼 고생이 많아. 이놈의 회사는 이렇게 중요한 공사를 전공자도 아닌 아무에게 막 맡기고 그런다니까.


김세평: 그, 그러니까요! 전 진짜 평생 문돌이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공사 중에 쓰이는 자재들이니, 배관도면이니 뭐 진짜 하나도 아는 게 없어요. 이런 상태로 지금 총괄을 맡았단 말입니다! 진짜 위기입니다, 위기!


낯선배: 그래, 네 말대로 지금 상황은 위기가 맞아. 그러나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 나는 이번 위기를 통해 네가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김세평: 배움의 기회요?


낯선배: 자, 여기 배움의 기회. 오늘도 책 한 권 가지고 왔어.


김세평: 낯선배님은 이번에도 제게 책을 선물해주시는군요. 어라? 이어령 교수님? 이분 되게 유명하신분이잖아요?


낯선배: 맞아. 유명하신 분이지. 오늘 가지고 온 책은 <이어령, 80년 생각>이야. 참고로 이 책은 이어령 교수와 그분의 제자인 김민희 작가님의 인터뷰형식으로 되어있어.


김세평: 아하. 인터뷰형식이면 읽기는 편하겠네요.


낯선배: 그래. 그러니 나중에 꼭 읽어보고. 일단 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김에 나는 이 책에서 네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내용이 있어.


김세평: 네? 그게 뭐죠?


낯선배: 이어령 교수님은 이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시지. “지금 우리 교육은 하우 투 언(earn)에 중점을 두고 있지.”


김세평: 하우 투 언(earn)이요?


낯선배: 이어령 교수님은 무언가를 얻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우리나라 교육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셨어.


김세평: 음? 우리나라 교육이 그랬던가요?


낯선배: 한번 잘 생각해봐. 지난 학창시절동안 우리가 교육자들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어왔었는지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배운 건 늘 무언가를 얻어내라는 것뿐이었어. 중간기말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라니, 봉사시간을 얻으라니, 수능점수를 얻으라니. 순 얻으라는 이야기뿐이었잖아.


김세평: 어라? 진짜 그러네요? 그러고 보면 대학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뭐 이런저런 자격증들을 얻어라, 토익점수를 얻어라, 좋은 직장을 얻어라······. 진짜 순 얻으라는 이야기만 들어왔네요?


낯선배: 그래. 이렇게 무얼 얻으라고만 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바뀌길 바랐던 이어령 교수님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L을 하나만 보태봐. ‘하우 투 런(Learn)’이 되잖아.”


김세평: 그러네요? ‘Earn’에다가 ‘L’을 하나 보태니 ‘Learn(배우다)’이 됐어요.


낯선배: 이렇게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나라 교육이 배우려는 것에 가치를 두면 분명 사회 전체가 달라질 거라고 이야기하시더군.


김세평: 아······.


낯선배: 생각해봐. 우린 이렇게 어릴 때부터 순 얻으라는 이야기만 듣고 자랐어.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도 무얼 배우려고 하기는커녕 무얼 얻을 궁리만 하고 있는 거야. 예를 들어 직장인이 되어서도 내가 직장에서 무얼 배워 보려는 생각은커녕 직장에서 뭘 좀 얻으려는 생각만 하는 거지..


김세평: 그러네요. 저도 솔직히 직장생활하면서 뭘 배워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음······.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이어령 교수님의 조언이 무언가 마음에 와 닿네요.


낯선배: 흠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에 나는 네가 가스배관 설치공사 일을 통해 한번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으면 좋겠어. 사실 배움 앞에서는 문과생 출신이라는 것도 중요하진 않잖아? 배움 앞에서 무슨 출신을 논하겠어?


김세평: 하하. 그러네요. 배울 수 있는 기회라······. 피해갈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가스배관에 대해 배우는 걸 제대로 즐겨봐야겠네요.


낯선배: 그리고 회사라는 곳을 그저 무언가를 얻어갈 곳이라고만 생각하면 결국 당사자에겐 억울한 일밖에 남지 않아. 왜냐면 내가 원하는 만큼 회사에서 얻을 순 없거든.


김세평: 낯선배님 말씀이 맞아요. 회사에서 받은 월급만 생각해도 기대이하죠.


낯선배: 반면에 회사에서 무언가 배울 생각을 해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왜냐면 회사에선 생각보다 배울 수 있는 게 정말 많거든. 그래서 직장생활이 누군가에게는 배움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거고.


김세평: 직장생활이 배움의 과정이라······.


낯선배: 이번 가스배관 설치공사도 네 배움의 과정 중 하나라 생각하고.


김세평: 네. 알겠어요. 에고, 저 이번 가스배관 설치공사 잘 할 수 있겠죠?


낯선배: 그럼. 공사는 아마 한 3개월 정도는 걸릴 거야. 그래도 다행히 업체 실장님이 일을 잘하시는 분이어서 별 문제없이 공사는 잘 마무리 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김세평: 어라? 저랑 같이 일하는 업체 실장님이 누군지 아세요?


낯선배: 후후. 뭐 모른다곤 할 수 없지.


김세평: 와우. 진짜 낯선배님은 모르시는 게 없네요?


낯선배: 그, 그런가? 음······. 그리고 세평아. 나 너한테 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김세평: 넵? 무슨 이야기요?


낯선배: 아마 이번 설치공사 잘 마무리되면 이번에는 팀장님이 네게 프로젝트도 하나 맡기실 거야.


김세평: 에? 공사 끝나자마자 프로젝트까지 맡는다고요? 팀장님은 왜 자꾸 나한테 뭘 시키려고만 하시지! 아아, 맞다. 배움의 기회다,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낯선배: 오~ 좋은 배움의 자세군. 아무튼 네가 맡게 될 프로젝트 때문에 팀 내부에서 갈등이 좀 있을 거야.


김세평: 팀 내부에서 갈등이 생긴다고요?


낯선배: 일단 내가 책 한 권 더 챙겨서 왔으니,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이 책을 꼭 미리 읽었으면 해. 알았지?

김세평: 헉! 책을 한 권 더 가지고 오셨어요? 한 번에 두 권을 선물해주신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어라? 악동뮤지션? 얘네 그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했던 남매가수 아니에요? 와우! 저 악뮤 노래들 진짜 좋아하는데! 낯선배님도 악뮤 좋아하세요?


어? 뭐야? 또 말도 없이 사라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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