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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pr 14. 2023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삶

덕질의 역사


이규석(요즘 애들은 알지도 못할 것 같다), 김형중(내가 좋아한 건 토이 말고 EOS).

국민학교 4~5학년 즈음이었던 어린 나는 그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겠다고 이불속에서 커다란 라디오를 끌어안고 귀를 기울이느라 집에 도둑이 드는 줄도 몰랐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그랬다. 비록 이불 안이었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금붙이를 도둑맞았다)

덕후의 기질이 발현된 첫 번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본격 덕후가 된 건 열여섯 무렵. 나는 솔리드 이준의 팬이 되었는데 그들의 팬클럽에 가입시켜 달라고 단식투쟁을 벌인 기억이 난다. 물론 엄마는 콧방귀도 뀌지 않으셨지만. 성인이 되면 기필코 그들의 팬클럽에 가입하고, 콘서트도 가고, 팬미팅도 가리라, 다짐했는데 그들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해체해 버렸다. 밤새 엉엉 울었고, 나의  덕질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덕질은 시작되었으니, 그들의 해체로 상심할 무렵 등장한 젝스키스의 은지원이 그 대상이었다. 나이도 그렇고, 내가 한 짓(?)들도 그렇고 나는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완전 판박이 었다. PC통신(나우누리) 팬클럽(수정마을)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일요일 교회 예배가 끝나면 등촌동으로 달려가 인기가요 공개방송을 봤다. 심지어 신길동 은지원 집 앞에 슬쩍 가보기도.(요즘은 사생팬이라고 난리 나겠지만 그땐 그랬다)


젝키 해체 후 은지원이 TV에서 잠시 사라졌을 때는 드라마 '우리 집'을 보고 배우 김래원의 팬이 되었다. 그의 팬클럽에 가입했고, 얼떨결에 운영진으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n차 관람이 당연했고 리뷰를 써가며 그의 활동을 응원했다.


그 사이에 취직이 되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조금 시들해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일본 문화에 빠지면서 스맙과 칸쟈니 8이라는 쟈니스 가수, 니시지마 히데토시라는 배우의 팬이 되어 그들의 영화와 드라마를 빠짐없이 챙겨봤고 심지어 칸쟈니는 공연도 보러 갔었다.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는 이준과 일본 문화에 관심이 사그라들면서 자연스레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쟈니스 가수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활동을 챙겨보며 응원하고 있다. 입덕은 있으나 탈덕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되는 건가?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방탄소년단, 특히 정국을 엄청 응원하고 있다. 공연 DVD를 사 모으고, 앨범을 사고 해외활동을 챙겨보고 있다.  어이없게 티켓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직 공연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참으로 유구한 덕질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추세로 보면 여든이 되어도 나는 누군가의 팬일 것이 확실하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





그렇다면 덕질은 대체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과 덕질은 다르다. 다이나믹듀오와 에픽하이를 좋아하지만, 은지원의 덕질을 했다. 강동원의 미모를 사랑하지만, 김래원의 덕질을 했다. 블락비의 노래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방탄소년단의 덕질을 했다.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태와 감정이다. 그러나 덕질은 그 대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들의 활동을 능동적으로 찾아내어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하는 집요함이기도 하다. '아, 좀 괴한가'싶을 정도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덕후가 아닌 사람들(머글)은 의구심을 갖는다.

'대체 왜?'

'은지원이 밥 먹여 줘?'

'네가 덕질에 쏟아부은 돈이면 중고차 한 대는 사고도 남았겠다'


덕후들은 대개 이런 시선들과 싸워온 투사들이다. 좋은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저 좋아하겠다는 건데,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도 돈도 모두 내 것인데 왜 우리는 이런 불편한 시선들을 감내해야 하는가?


솔직히 본업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더 좋은 대학을 갔을지도, 김래원이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찍 취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게 뭐. 그게 더 나은 삶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로 인해 그 모든 시간을 견뎌냈다. 암흑 같았던 고3과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


감히 말하건대 덕후에게 '덕질의 대상'은 진통제이다. 현실 회피가 아니다.


게다가 엉겁결에 생기는 순기능도 무시하지 못한다. 일본 가수와 배우의 덕질을 하며 쌓은 일본어 실력으로 교육기관의 도움 없이 JLPT N1을 취득했고, 업무 관련 서적 번역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최근엔 방탄소년단 덕분에 학창 시절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영어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내 비록 머글들이 말하는 중고차는 잃었지만, 나의 덕질은 그와 충분히 교환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과 덕질은 다르지만, 덕질도 역시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다만 더 열심히, 집요하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어서 좋다. 여든이 되어도 덕후일 내가 좋다.

딱 하나, 여든 살에 디너쇼를 간다면 과연 나는 티켓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좀 불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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