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컵에 부어 마시는 팩 음료를 또 계산도 안 하고 먼저 부어서 아예 마시면서 들고 와서는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팩 종류만 스무 개는 넘을 텐데 음료 색깔만 보고 뭔 줄 알고 계산하라는 건지. 부어진 내용물엔 바코드도 없으니 쓰레기통을 뒤져 포장지를 찾아야 한다. 이래서 꼭 계산 먼저 하고 드시라고 써 놓은 건데. 거기다 컵에 담긴 얼음을 깨려다가 플라스틱 일회용 컵이 부서졌는지 갈라진 틈으로 음료가 줄줄 새어 나왔다. 어휴. 상식적으로 얼음이 더 약하겠냐, 플라스틱이 약하겠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무식한 새끼들, 진짜로 일상생활 가능하냐.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남들처럼 직업을 갖고 돈을 벌며 산다는게 여전히 신기하다.
깨져서 샌다고 말했더니 음료팩 + 얼음컵 한 세트를 다시 꺼내서 또 계산 전에 부어온다. 두 개 계산해 주면 되지 않냐고. 두 번째 음료도 똑같이 얼음을 깨다 컵도 깨져 아까처럼 새고 있다. 우리가 냉동실에 진열하기 전에 한 번, 그리고 계산할 때 한 번 더 확인하니까 원래부터 깨져있던 상황일 수는 없다. 나는 이 양반이 단지 술에 취한 사람인지, 이 정도 학습도 불가능할만치 능지가 처참한 새끼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두 음료는 손에 들자마자 더 부서져 버려서 도저히 마실 수도 없다. 어쨌든 그쪽 과실이고 돈은 받아야 하니까 계산하려니 이번엔 지갑이 없단다. 지갑 찾아온다며 나가려 하길래 그대로 튈 것 같아서 붙잡았다. 그가 전화해서 누구를 불렀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동탄룩으로 휘감은 동거녀가 왔다. 동탄룩의 포인트는 속옷 라인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다.
그 와중에도 앳된 애들이 들어와 어떻게든 담배를 뚫어보려고 돌아가면서 수작질을 했고, 갑자기 대학 후배가 약속도 없이 찾아왔다. 혼란하다. 버겁다.
여자는 집에서 마시는 건강 어쩌구 팩 음료를 가져와서는 ‘오빠, 내가 편의점꺼 먹지 말고 이거 먹으라고 했잖아~’하면서 나도 하나 준다. 하나도 안 고마웠다. 그런 건 됐으니까 빨리 계산만 해 주면 되는데, 우리 오빠가 먹지도 못한 음료값을 왜 자기가 내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기 싫다는 말을 길게도 말한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그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것뿐인데. 억울한 건 난데.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마다 입고 있던 옷이 한 겹씩 없어지더니 이제 좀 알아 쳐먹었을까 싶을 즈음이 됐을 땐 완전히 발가벗겨져 있었다. 피해자는 나인데,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수치심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 걸까.
몸을 가리며 뒤를 돌아봤을 때 후배는 고양이로 변해있었고,
손님이 온 걸 알리는 벨소리에 꿈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