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병규 Dec 30. 2022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10)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6 "일시적인 상태를 조심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6 "일시적인 상태를 조심하라"



#일시적인 상태가 소비를 부른다


저는 집에 책상이 없습니다. 연구자나 교수 가운데 책상이 없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일을 하는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책상이 필요해져서 제 책상을 아이에게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대신 저는 작은 접이식 탁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상이 없다 보니 책을 쓸 때에는 방바닥에 앉아서 허벅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사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책상 없이 지내는 것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이런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이 좀 힘겹게 느껴집니다. 노트북의 발열 때문입니다. 폭염이 지속되는 날에는 노트북도 몹시 뜨거워집니다. 노트북 열기 때문에 몸이 더 더워지다 보니 잡지책 한 권을 노트북 밑에 깔아놓고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노트북 발열은 더 심해지고, 무게감도 더해져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가 몹시 불편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다? 책상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책상을 구입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책상 구입은 제외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노트북 받침대를 구입하는 것이겠죠. 요즘 나오는 노트북 받침대들은 무게도 가볍고 노트북의 온도도 낮춰주는 기능을 가진 좋은 제품들이 많습니다. 쇼핑앱에 '노트북 받침대'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수없이 다양한 제품이 검색됩니다.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원클릭으로 주문이 끝나고, 다음날이면 제품이 집으로 배송되어 옵니다.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구입한 제품을 얼마나 오래 사용하게 될까요? 아마 한, 두 달 정도 사용한 후에 방구석 어딘가로 치워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시적인 상태 때문에 구매한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트북을 사용하다가 불편함을 느끼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날씨입니다. 날이 더워서 노트북의 발열이 심해지고, 그래서 사용하기가 불편해진 것이죠. 하지만 날이 시원해지면 이런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얼마 전 구입한 노트북 받침대의 필요성도 완전히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저는 노트북 받침대를 구입하지 않고, 여전히 잡지 한 권을 받쳐놓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이 다시 시원해질 때를 기다립니다. 


일시적인 상태는 말 그대로 단기간만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불편함, 피곤함, 지루함과 같은 상태가 일시적인 상태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일시적인 상태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상태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인 상태를 기반으로 소비 결정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일시적인 상태가 강할수록 사람들은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가령, 지금 삶에서 불편함이 강하게 느껴지면 앞으로도 삶이 계속 불편할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 지루함이나 따분함이 크게 느껴지면 앞으로도 계속 삶이 지루하고 따분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시적인 상태를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에 돈을 쓰게 됩니다. 


한 대학생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대학생은 학기 중에 여섯 과목의 수업을 수강하고 학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수업 과제를 수행하고 학회 활동을 하느라 매우 바쁘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방학이 시작되니 해야 할 과제도 없고 학회 활동도 뜸해집니다. 갑자기 무료함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이곳저곳을 방문하다가 요즘 인기가 있다는 게임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 게임기가 무척 가지고 싶어 집니다. 이 게임기만 있으면 자신의 인생이 크게 즐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게임기를 주문합니다. 게임기를 구입하고 며칠 동안은 게임을 재미있게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내 바쁜 일들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고 무료함이 사라지자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느끼는 지루함이 일시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언제까지나 이 게임기에서 큰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소비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죠. 


#투사 편향을 막아라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일시적으로 어떤 상태를 경험하는 일이 많습니다. 갑자기 몸이 피곤해지는 일도 있고, 지루해지거나 우울해지는 일도 있습니다. 어떤 영화나 동영상을 보고 난 후에 갑자기 소비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일도 있습니다. 가령, 캠핑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난 후 갑자기 캠핑이 몹시 하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일시적 상태는 사람들에게 소비에 대한 강한 욕구를 만들어냅니다. 갑자기 어떤 제품이 가치 있게 느껴지게 만들죠. 일시적으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은 갑자기 게임기가 가지고 싶어지고, 일시적으로 캠핑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된 사람은 캠핑 장비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까지나 이 제품을 잘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가 바뀌게 되면 제품에 대한 욕구도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일시적으로 좋아하거나 필요하게 된 것을 미래에도 계속 좋아하거나 필요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투사 편향 projection bias라고 부릅니다. 저도 투사 편향 때문에 고가의 자전거를 구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교수를 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주말 아침이면 집 근처 길에서 사이클(로드 바이크)을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논문 성과를 내기 위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연구를 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모두 완료되어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까지 잠시 여유 있는 시간을 생겼을 때가 있었고, 갑자기 사이클을 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겨났습니다. 사이클만 구입하면 주말마다 큰 즐거움을 느끼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백만 원이 넘는 가격의 사이클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클에 어울리는 고밀착(일명 쫄쫄이) 상하의도 함께 마련을 했습니다. 구입하고 한 달 정도는 주말마다 자전거를 탔습니다. 무척 즐거웠죠. 저도 주말마다 사이클을 즐기는 멋진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시 연구 프로젝트들이 시작된 이후로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은데 못 탄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실상 한 달의 즐거움을 위해서 백만 원을 낭비해 버린 것입니다. 이때 제 자신이 투사 편향으로 인해 잘못된 소비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 부끄럽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투사 편향을 피할 수 있을까요? 투사 편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사 편향을 강하게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과거의 저는 투사 편향이 강한 사람이었고, 지금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투사 편향을 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과 습관입니다. 우선은 자신이 일시적 상태 때문에 소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구입한 제품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입 직후에는 열심히 사용했지만 금세 사용하지 않게 된 제품들이 많이 있겠죠. 그 가운데 분명 자신의 상태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구입한 제품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품들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이 투사 편향 때문에 잘못된 구매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습관입니다. 어떤 제품을 구입하고 싶을 때 자신의 일시적 상태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지 스스로 되묻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특히, 전에는 제품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 제품이 필요하게 느껴지거나 좋게 느껴지는 경우라면 그 이유가 자신의 일시적인 상태 때문인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 소개한 노트북 받침대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 노트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의 일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노트북 받침대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지금 와서 노트북 받침대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이는 일시적인 상태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어떤 제품에 대한 욕구를 가지는 이유가 자신의 일시적인 상태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상태가 바뀌면 제품에 대한 니즈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습관을 통해서 투사 편향의 오류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일시적인 상태 때문에 구입한 자전거를 아직도 벽에 걸어놓고 있다. 매일 이 자전거를 보면서 내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다.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 #6 일시적인 상태를 조심하라


일시적인 상태들은 소비에 대한 강한 욕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일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순간 제품의 필요성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소비를 할 때는 자신의 소비 욕구가 현재의 일시적인 상태 때문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필요성 때문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 


작가의 이전글 김병규의 [소비 연비] 이야기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