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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ug 05. 2023

1년 뒤 내가 죽는다면?

내 삶의 목표와 꿈,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

나는 평소에 터무니없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가 죽게 되는 상상. 몇 달 전 친구랑 얘기하다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이 너무 두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차피 죽은 이후의 나는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할 텐데 왜 그렇게 두렵지? 죽으면 그냥 죽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코앞에 있는 듯한 죽음이 두렵기만 하다. 바로 엊그저께는 우리 집 바로 앞에도 칼을 든 사람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고립되고, 외롭고, 분노에 가득 차게 되었을까.



당장 내가 죽는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까?

몇 달 전 엄마와 이야기했던 주제였는데, 우리 어머니는 후회가 없으시다고 하셨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친구도 사귈 만큼 사귀었고, 나도 잘 컸고, 여행도 다닐 만큼 다니셨단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다르다. 단순히 젊어서, 덜 살아서일까? '후회'라기보다는 못다 한 꿈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 같다.


내 아직 못다 한 꿈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 꿈을 이루고 싶다면, 왜 당장 실천하지 않고 22년을 살았는지 의문이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어', '더 능력을 키우고, 더 경험을 쌓고'라는 이유만으로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버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완벽한 준비란 없을 텐데 말이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꿈

사실 나도 이렇게 확실한 꿈을,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된 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 일을 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일을 하면서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까?' '세상은 지금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을까?'를 끊임없이 되묻다 보니, 나도 어느새 이 생각에 스며들었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회 문제를,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되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졌다.


아주 솔직하게, 나는 원래 '나 좋은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항상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했고, 내 모든 행동의 선택 기준은 '내가 현재에, 혹은 미래에 행복할까'였다. 다른 사람의,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에 공감하기엔 난 너무 바빴다. 여유가 없었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바쁜걸.


그러나 일을 하며 역설적으로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이기적 이타주의랄까. 나의 좁은 상상력을 넓히며,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영향을 미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했다.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뿌듯함, 성취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한몫했다. 맑고 힘찬 눈으로 '이게 더 진짜 나은 방향인지' 몇 시간이고 토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삶의 이정표를 부여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1년 뒤 죽는다면?

일련의 생각을 바탕으로 이 꿈을 잘 이루면서 살기 위해서는 '죽는다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눈을 딱 감고 상상해 봤다. 나에게 하루가 남았다면? 이건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 다 쓰고 죽어야지. 10년이 남았다면? 너무 멀어서 부족한 내 상상력으로는 잘 다가오지 않았다. 1년이 남았다고 생각해 보자. 아, 이제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너무 즉흥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해답을 줄 거라 믿는다. 나에게 살 날이 1년 정도 남았다고 한다면, 내 꿈도, 내 인생의 목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영향을 미치는 삶. 다만 그 속도를 더 올리려고 노력하겠지?


사람이 아플 때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걸 깨닫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마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만약 1년 뒤 죽는다면 '죽음의 아고라'를 만들고 싶다. 나는 고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가 될 거다. 시험을 망친 재수생, 사업이 망한 사업가, 약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여러 사람들을 불러다가 이야기하고, 위로하고 싶다. '1년 뒤 죽는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라고. 당신은 값진 삶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행복하고 뿌듯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내 꿈을 생각하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해 내는 삶.



죽는다고 생각하면, 미니멀 라이프

이런 생각을 하면 모든 물질적 집착 역시 허상이 된다. SNS로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더 편리해졌지만,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부럽다'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공평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사람도 언젠간 죽는다.


내가 1년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쓰지도 않을 것들을 그저 과시하기 위해 사는 데 낭비하지 않겠지. 다 쓰지도 못할 천문학적인 돈이 부럽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지난 2주간 정신없이 월급을 써댄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는 정말 중요한 것에 돈을 쓰고 있는지?



어쩌면 이것도 나의 욕심일까

행위가 전부다. 명성은 허무한 것이다.
-괴테 <파우스트> 중-

이렇게 1년 뒤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연히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내 꿈을 여전히 좇고 싶은 것은 명예에 대한 집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욕심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건 과연 옳은 길일까? 하는 질문을 생각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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