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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Mar 21. 2024

왜 노숙비둘기에게 집을 주면 안되나요?

저의 본가는 용인에 있는 아파트입니다. 15층 짜리 아파트에서 중간 정도 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021년 어느날부터인가 비둘기 두 마리가 찾아오기 시작하더군요.


비둘기 두 마리가 항상 보이던 곳은 에어컨 실외기 아래였습니다. 실외기 아래에 보면 딱 비둘기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남거든요. 그 공간 안에 비둘기 두 마리가 언제나 들어와 잠을 자고 가곤 했습니다.


처음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 비둘기들을 쫓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비둘기가 들어와 있을 때쯤, 그러니까 대략 저녁 8시~9시 정도가 되면 일부러 거실 창을 열고 물을 끼얹어버리곤 하셨지요. 그러면 그 비둘기 두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버리곤 했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전혀 들은 건 어머니가 비둘기 쫓아내기를 시작하고도 몇 달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로 하소연을 하듯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녁 때면 비둘기가 들어와서 잠을 잔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의 그 불평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한테 먹을 것을 줬나요?"


"아니지. 그것들(?) 다시는 보기 싫은데 내가 먹을 걸 줄리가 있니?"


"그러면 비둘기가 거기서 잠을 자서 우리 집에 안 좋은 게 있나요?"


"......그런 건 없지."


어머니의 '그런 건 없지'라는 말은 제가 질문을 한 의도를 알아채고 체념하듯 하신 말이었습니다. 비둘기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잔다고 해서 해가 되는 것만 없다면, 사실 비둘기에게 집 한 칸을 내어주어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들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엄마, 그 비둘기들도 노숙(?)하느라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다 몸누일 편한 곳 찾아서 잠깐 들어와 자겠다는데. 그걸 굳이 내쫓을 이유는 없지 않나요?"


불쌍하잖아요, 한 마디를 더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저희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까치였으면 반기기라도 하지. 왜 하필 비둘기야."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어머니 성격 상 앞으로는 비둘기를 내쫓지 못하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 입에 사람 입에 들어가는 닭이 불쌍하다고 계란과 닭가슴살을 절대 함께 드시지 않으시는 분이거든요. 


아니나다를까. 비둘기 부부(?)는 그 후로도 1년 정도 에어컨 실외기 밑에서 편히 잠을 자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은혜를 원수로 갚지는 않아서 에어컨 실외기 밑에 알을 낳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알을 낳는 바람에 구더기 라도 생겼다면 저도 아마 어머니의 원망을 들었을텐데 말입니다. 


지금도 노숙비둘기에게 저희 본가는 언제든 에어컨 실외기 밑을 내어줄 생각이시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노숙비둘기들이 있다면 참고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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