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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 bam Mar 21. 2024

[런던, 08] 눈을 감으면 오케스트라가 보인다는 것

London Oratory

런던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퇴근 후 자주 찾아갔던 성당이 있다. 바로 London Oratory이다. 내가 일했던 박물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이기 때문에 휴식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한두 명의 사람만이 있는 텅 빈 성당에 있을 때면 고요 속 마음이 평안해진다. 성당을 가면 어김없이 바로크 시대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성가대의 화음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나를 둘러싼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는 멜로디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상상 속에서 불러낸다. 내 음악의 경지가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다면 오케스트라와 성가대를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을 해낼 수 있게 한 장소가 바로 이 London Oratory였다.


London Oratory

성당 옆에는 Victoria & Albert Museum(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과 Natural History Museum(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이 두 곳은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오라토리 성당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의 부재 속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다. 과거 미국에서 성가대로 3년간 활동하면서 이 정도 규모의 성당에서 합창을 부른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 시절의 나와 연결해 준다. 그리고 잠시 과거를 마주한다.


기도하는 할머니

맨 앞줄에서 홀로 기도드리는 할머니를 보았다. 어떤 기도를 그렇게 간절하게 드리는 것일까. 나도 잠시 눈을 감아 세상의 따듯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척박하고 인류애가 사라진 폭력 앞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인다는 것은, 여태껏 세상을 단면으로 보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눈을 감고 오케스트라를 불러들일 때면 비로소 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음악의 흐름 속에서 시간을 연주한다.


Photo by 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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