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나서 인간의 존폐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다. 그 생각의 사이클 끝에는 폼페이가 있었다. 오펜하이머나 폼페이와 같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비극은 언제나 일상을 멈추게 한다. 그 역사를 잠시 돌이켜볼 때 생기는 무력함은 마치 심해의 수압에 나의 온몸이 짓눌리는 느낌이다. 내가 첫 발을 폼페이에 들였을 때 느낀 오감 중 하나는 시각도, 청각도 아닌 촉각이었다. 짙은 안갯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도시의 유골은 싸늘한 바람과 함께 나를 맞이했다.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폼페이의 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 나폴리 인근에 위치해 있다. 여러 패키지 투어를 통해 비교적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리스트에 폼페이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폼페이는 역사적으로 유명하고 전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지이다.
폼페이는 79년 8월 베수비오 산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분화로 인해 하루 만에 화산재와 용암에 묻혔다. 이후 16세기까지 세계로부터 잊힌 채 있었으며, 18세기인 1748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 폼페이는 기원전 6세기 오스크인들이 세웠으며,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로마의 주요 휴양지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극장, 아레나, 집회소, 목욕탕 등이 있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현재 폼페이의 모습이며, 그 뒤에 이 모습을 만들게 한 베수비오 산이 보인다. 산과 도시의 거리는 대략 10km이다. 사실 베수비오 정도 규모의 화산이 폭발한다면 10km 거리의 도시 폼페이는 발 밑에 지뢰를 깔고 사는 것과 같다. 운명의 장난처럼 화산 폭발 당일 폼페이는 불의 신 '불카누스'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고 있었다.
그로 인해 폼페이 인구 10% 정도인 2천여 명이 도시와 함께 화산재에 묻혔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피신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도시 전체가 하루 만에 묻혔다는 임팩트는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 로마의 베버리힐즈로 불릴 만큼 폼페이는 부유했으며, 그 흔적은 고스란히 현장에 남아있다.
꽉 찬 먹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햇빛은 폼페이만을 위한 조명인 것일까. 겨울날 서늘하기만 했던 도시에 양분을 주듯이 관광객의 생기로 폼페이는 다시 살아간다.
Photo by 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