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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an 16. 2023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그의 방황이 말해주는 것들]

1.구보 씨의 하루가 오늘 날 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람의 하루를 바탕으로 소설로 쓴다면 분명 그 소설엔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사건들이 추가 될 것이고 독자의 흥미를 끌 갈등이 추가 될 것입니다. 소설은 작가에 의해 연출된 갈등을 보고 그 갈등을 독자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소설뿐만 아닌 우리가 보는 드라마와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소설은 글을 통해 표현된 인물의 심리를 보게 되고 영화나 드라마는 씬과 시퀸스를 통해 표현된 인물의 심리를 보게 됩니다. 이 글에서 다룰 박태원 작가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우리가 아는 소설의 구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중심은 구보 씨의 시간이 아닙니다. 구보 씨의 의식 그 자체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글을 통해 연출된 한 사람의 갈등과 시간의 파편들을 보는 것이 아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구보 씨의 고뇌와 생각들을 보게 됩니다. 구보 씨가 하루 동안 겪어온 일을 줄기로 삼고 구보 씨가 바라본 당시 경성의 모습과 그의 고뇌들이 가지를 치게 됩니다. 우리가 겪는 하루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의 하루 또한 하루 동안 겼었던 일들을 줄기로 삼고 여러 의식들과 고민들이 가지를 치게 됩니다. 박태원 작가의 소설 속 의식의 흐름 기법은 한 사람의 일과를 통해 당시 세태의 모습과 그 세대들이 갖고 있었던 주된 고민들을 무엇보다 섬세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훈을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과 인물을 창작하는 계화소설들과는 상반되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갈등 없이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과 고뇌를 그렸습니다. 이 소설을 갈등이 없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소설, 무의미한 소설이라 보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견해들은 이 소설 속의 구보의 의식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보 씨의 의식 안에서 우린 근대화가 낳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질병과 당시 시대의 고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우리는 구보 씨의 의식이라는 안경을 쓰고 근대의 경성을 보게 됩니다. 구보 씨의 의식 역시 독자들의 감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가 겪은 감상과 고뇌는 당시 경성을 보게 해주는 하나의 관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보 씨의 의식과 과거의 기억들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 흩어진 과거의 기억들을 통해 구보 씨는 행복이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1930년 대 살아왔던 사람들의 고민과 정신적인 질병을 볼 수 있을 뿐 이 소설이 당시 고민과 질병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 지 알 수 없습니다. 평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박태원 작가가 근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박태원 작가 역시 동경 법정 대학을 다닐 시기에 근대화의 도시의 분위기를 즐겼었고 모던 보이라고 불렸었지만 그 근대화의 이면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사회의 불안에는 일제 식민지라는 상황과 1930년 경제 공황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황금이 몰수당한 조선의 상황을 황금광시대로 표현하고 경제 공황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은 구보 씨의 상황을 통해 묘사됩니다. 구보 씨의 모습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당시 지식인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상황 하에서 급하게 진행된 근대화는 취업 난, 경제 공항이라는 부작용을 나았습니다. 그렇게 이런 부작용은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질병을 안겨줍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선 구보 씨가 갖는 질병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질병들이 여러 번 언급됩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구보 씨의 육체적인 질병 역시 근대화 당시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근대화가 낳은 불안과 정신적 질병들을 세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질병들이 오늘 날에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확신할 순 없습니다. 돈과 명예에 의해 사랑이라는 가치마저 타락해버린 위대한 개츠비 속 세상이 오늘 날의 현실에도 적용이 되듯이 구보 씨가 겪는 질병이 오늘 날에 해결 되었다고 볼 수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구보 씨의 하루가 오늘 날 까지 전해지는 이유 역시 근대의 질병이 고질 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당시 1930년에 겪은 세계 공황은 형태만 다를 뿐 오늘날 우린 매일 경제 공황이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1930년 대 취업난과 젊은 지식층의 방황은 오늘날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당시 세 태 만을 묘사했다고 보기엔 그 세태 안의 불안과 고민이 오늘 날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박태원 작가는 어쩌면 근대화가 갖고 온 질병이 1930년대의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된 자본에 따른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오늘 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듯 구보 씨의 고민과 질병 또한 1930년대만의 이야기에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2. 구보 씨가 말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구보 씨의 의식에 중심에는 행복에 대한 물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질병을 몸에 지니고 근대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구보가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은 이내 구보에게로 이어집니다. 도시를 배회하는 구보의 모습은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의식과 이어집니다. 가정을 이룬 남녀를 보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고민을 하게 되고 전차 안에서 예전에 만난 적 있는 여자를 보게 되고 여자를 만난 기억이 행복이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구보의 여정은 행복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해 가정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며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이후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며 결말을 맺습니다. 소설 속 의 구보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고 행복에 도달하는 과정이 사랑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이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는 박태원 작가의 자전적인 견해가 담겨 있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연재를 끝마친 한 달 후인 1934년 10월 24일 박태원 작가는 결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소설 속의 구보의 고민은 당시 결혼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인 고민 뿐 만 아닌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보의 방황은 그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됩니다. 이 소설은 구보의 집에서 시작해서 다시 구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매일 같이 반복 되는 일상에 지쳐 자신의 집을 떠난 구보가 행복과 자신의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하며 집을 나서게 됩니다. 구보는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근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정신적인 질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만나는 사람을 통해 점점 괴로워져만 갑니다. 방황을 끝으로 그는 자신의 행복과 어머니의 행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머니의 행복에 좇아 결혼을 결심하고 더욱 소설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집안의 일상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일상을 떠나 근대의 경성으로 도피했던 그가 근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정신적인 질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도피해왔던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구보의 방황은 그를 성장시킴과 동시에 그로 하여금 자신이 걸어갈 길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한 행복이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드는 것이나 좋은 친구를 만나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소설은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에 남아있는 질병, 고민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보 씨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으로 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시대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우울하지만 동시에 일상의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3. 나에게 구보 씨의 하루는 어떤 의미인가?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의식의 흐름 기법, 단락 마다 바뀌는 시간대에 매우 놀랐습니다. 박태원작가의 이러한 소설 형식은 저에게 흥미를 갖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 소설은 그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소설 속에 나오는 구보 씨처럼 제 일상의 무료함을 느끼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소설 속의 구보 씨처럼 저 또한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색에 잠기고 여러 생각을 해봤던 적이 있기에 그의 방황과 고뇌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고등학교 2 학년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에 다시금 끌리게 된 이유 역시 당시 구보 씨의 심리에 큰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저도 구보씨 가 겪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 본적이 있기에 소설을 읽을 때 구보 씨의 시선에 완전히 동화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의 결말 부에 다다라 저는 그 고독감이 안도감으로 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구보 씨가 자신의 일상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마음에 의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저에게 재미있는 흑백 영화와도 같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흑백화면과도 같이 어렵고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지만 그 결말엔 컬러 영화 보다 더 한 감명을 남겨주었습니다. 내용 없이 한 사람의 의식만으로 흘러가는 소설임에도 제가 이렇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던 이유는 구보 씨의 의식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근대화가 낳은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질병, 걱정, 불안이 담겨있습니다. 또 행복을 통한 고민을 통해 일상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소설 외적으로는 서양문학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모더니즘을 경성에 적용해 한국 문학의 모더니즘 소설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큰 성취를 보여주고 소설 내적으로는 근대화의 질병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그 성취는 대단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박태원 작가의 최고의 작품으로 고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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