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틈새에서 만난 황금빛 시간

그 넓은 품에 기대어 잠시라도 쉬다 오세요.

by 달빛모아
그림. 달빛모아 2025. 10

부평역사박물관에서 부천 방향으로 굴포천 둘레길을 걷다 보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게 된다. 십여 분쯤 더 걸으면 서운교라는 다리를 만나고,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 논 멍의 시간이 시작된다. 5월이면 얕은 물에 연둣빛 모가 심긴 논이 펼쳐지고, 여름이면 장맛비와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벼가 우리를 맞이한다.


초록 물결 사이에서 흰 백로를 만나기도 하고, 풀잎 끝마다 작은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논은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 간다. 멀리서 바라보면 온 들판이 황금빛 물결로 뒤덮인 듯 찬란하게 빛나고, 가까이 다가서면 벼알 하나하나가 작고 소중한 결실로 반짝인다. 그 위를 가르는 기러기 떼의 날갯짓은 떠남이 아니라, 다시 찾아올 계절을 기약하는 정다운 인사처럼 따뜻하다.


농기구 바퀴 자국이 남긴 흔적을 피해 자라난 풀들은 마치 작은 중앙분리선처럼 길을 나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메뚜기와 풀벌레 소리가 멋진 화음이 되어 정겹게 들린다. 잠자리, 메뚜기, 사마귀,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곤충들까지, 수많은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다. 논길을 걷는다는 건, 그 작은 세상 속을 천천히 여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있어서일까? 신랑과 나는 자연스레 어린 소년과 소녀가 된 듯한 기분에 젖었을 때가 있다. 나는 메뚜기를 잡아보고 싶어 뛰어다니면, 신랑은 눈으로만 보자고 한다. 신랑은 시골의 할머니 댁에서 자주 지냈다는데도 메뚜기와 올챙이도 잡지 못한다.


큰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올챙이를 보여주려고 장흥까지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개울가의 올챙이를 눈으로만 지켜봤지, 잡지 못했다. 올챙이의 미끄덩한 촉감이 싫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메뚜기는 다르다. 여치나 메뚜기를 잡고 녀석들을 잠시 관찰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

결혼 적령기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유년 시절을 잘 모른다. 요즘 논길을 함께 걷다 신랑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언젠가 사진첩에서 봤던 그시절 애 땐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다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논길을 걷는다. 이곳은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이곳을 오가며 촬영한 휴대전화 사진을 다년간 지인들과 공유해서일까? 근래에는 논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가 꼬리를 기분 좋게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신랑과 나의 비밀 장소가 타인의 시선에도 멋져 보였겠지 싶다.





요즘은 녹색 가득한 둑길에 둥근잎유홍초가 피어 있다. 꽃의 크기가 2cm 내외로 앙증맞고 강렬한 주황색의 꽃이다. 잎은 하트 모양으로 ‘사랑해~ 사랑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초록 가득한 길에 주황색의 꽃은 생기를 듬뿍 불어넣고 있다.


숨겨둔 깜짝선물처럼 발견한 논길, 보도블록에 둘러싸인 주거지역에서 삼십여 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곳을 소개합니다. 황금빛 논길을 걷고 싶으신가요? 누군가에 의해 계획되고 다듬어진 공간이 아닌 풀과 꽃이 제멋대로 자라나 어우러진 둑길, 그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해방감을 느껴보세요.


일상의 부산한 마음이 잦아들고 편안함이 느껴지실 거예요. 추수가 끝나기 전, 백로들이 마중 나오는 굴포천 둘레길을 따라 황금빛 논을 보러 가세요. 그 넓은 품에 기대어 잠시라도 쉬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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