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savior
꽃이 피는 계절을 만나기 위해
견뎌온 겨울은
그 해처럼 여전히
시험에 들게 하지만
작년 이맘때,
출퇴근길에 듣고 또 들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이유가 있어서
또 어떤 날은 이유가 없어도
흘러내리는 마음을 다루는 것이 녹록지 않았더랬다.
본래 나라는 사람은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나이가 갖춰진 사람은
여러 가지 특화된 사회적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나 역시, 나름대로 터득한 기술이 있다.
마음은 액체의 성질을 띠고 있다.
무작정 손에 쥐려 하면 쥐어지지 않기에 잘 다듬고 보듬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지 않을 만큼 보이지 않는 막이 형성되는데
이때 손바닥 중앙에 살포시 두어야 한다.
이 상태가 평생 지속된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부르는 진짜 '성인'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살면서 마음을 다루는 기술을 하나쯤 가지게 되는 거겠지.
손가락 틈새로 한 두 방울 규칙적으로 똑똑 흐르는 것쯤이야 이젠 괜찮다.
규칙성을 나름 파악할 수 있으니 지켜볼 만하다.
'내 마음이 지금 내 손에서 흘러내리고 있어!'라는 다급함보다
'내 마음이 지금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구나.'라는 관망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도 힘들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말이다.
마음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흘러내려 손 쓸 새 없이 본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면
그건 괜찮지 않다.
손기술을 발휘하기는커녕 한 방울이라도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마음이 모두 흘러내리고만 빈자리를 손으로 꽉 쥐고 또 쥐다 보면
바위 같은 묵직한 손이 이내 저릿저릿해진다.
한없이 무겁고 저릿한 그 순간이 결국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만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도망치고, 숨고 싶어.'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까?'
savior
불완전한 나를 안아준
그 품에 기대 꿈을 꿔
내 모든 걸 걸고
돌이켜보니 나는 마음이 마구 흘러내릴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착했던 것 같다.
내가 살아가고 있으니까 마음도 흘러내리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왜?
이유를 묻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엔
나는 신을 믿지도 않고, 철학이나 과학에 능통하지도 못하다.
존재의 이유를 파고들고 싶어도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흘러내린 마음이 도착한 종착지.
그곳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나도 안다. 골치 아프고, 당장 먹고사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행위다.
1+1=2라는 계산식처럼 답이 바로 나오지 않기에
이럴 때마다 지식과 지혜를 풍부하게 겸비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결국 난 이곳에 서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너져 내린 내 마음을 나는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언제 이 답을 찾아낼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산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저 지금은 답을 얻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이다.
마구 흘러내린 마음을 가만히 보기도 하고
혹여 어떤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여보면서
조금이라도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어 보는 것.
이것이 현재 나의 savior 아닐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엔
뭐가 진짠지 구분할 수 없지만
그 해처럼 여전히
해답을 적어가겠지
이 글이 나올 수 있는 틈을 준 음악: 윤하-sav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