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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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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라 Feb 14. 2023

남자화장실에 끌려가서 맞은 이야기 1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랑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인데 우리 엄마는 평생 몰라야 하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일진, 이진, 삼진, 사진, 오진이라는 역할이 초등학교마다 있었다.

분명한 건 싸움 실력으로 매겨지는 등급은 아니고 키가 크거나 외모가 괜찮거나 염색을 했거나 좋은 아파트에 살면 자기들끼리 권력을 부여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공표했다. 13살밖에 안 된 나였지만 그 당시에도 걔네가 참 고까웠다. (지금보다 성숙했던 것 같음)


우리 반에서는 일진이자 6학년 전체에서는 삼진인 남자애가 있었는데, 나는 걔를 정말 싫어했다.


"난 네가 싫어!"


라고 말만 안 했지 그 애랑은 대화도 하지 않았고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할 때도 같은 편이 되기 싫어서 무조건 그 애의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그 애도 자기보다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고 빽*도 없어서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여자애가 가소로웠는지 내 외모를 가지고 남자애들과 웃으며 앞담을 깠다.

(*빽은 가방이 아니라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존재이다. 그때의 유행어이다)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별명이 '오리박'이 되었다. 컴퓨터실 앞에 붙어있는 '명예의 전당: 자격증 취득자'에 올라간 내 증명사진이 오리 같다나 뭐라나.


서로 싫어하지만 딱히 치고받고 싸우지는 않는 관계. 이게 나와 그 애의 관계였다.




우리 반에는 지적장애 1급인 친구가 있었다. 

가명을 사용하여 진우라고 부르겠다. 진우는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아서 맨 뒤에 앉았다. 진우는 그림을 정말 잘 그렸는데, 화장실 가는 시간과 특별반 수업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교실 제자리에 앉아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색칠했다. 진우는 학교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친구들, 선생님과 대화 없이 그림만 조용히 그리는 친구였다.


하지만 갑자기 외부에서 자극을 받게 되면 바지를 내리고 교실 뒤로 가서 춤을 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극을 받게 되면'이다. 그 친구에게 자극을 주지 않으면 바지를 내릴 일도 없다는 뜻이다.


사건이 터진 건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삼진이가(그냥 삼진 남자애를 '삼진이'라고 부르겠다) 반 친구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던 진우에게서 스케치북을 뺏어다가 앞장을 부욱 찢어버렸다. 당연히 진우는 소리를 지르며 바지를 내렸고 삼진이는 낄낄대며 웃었다.


그때 내 눈깔이 돌았다.

나는 그대로 삼진이의 책상으로 직행해서 그 자식의 책상 서랍에 있던 교과서와 노트를 다 꺼냈다. 삼진이가 진우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 애의 물건을 부욱 부욱 찢어버렸다. 삼진이는 진우의 춤을 보며 남자애들과 웃느라 자기의 교과서와 노트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어서 교실 맨 뒤에 있는 사물함으로 가서 삼진이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사물함을 찾았다. 사물함 속 교과서를 한 권 집어서 삼진이가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다(나중에 친구가 말해줬는데 내 얼굴이 이상해서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삼진이는 그제야 나를 쳐다보았고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 채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들로 시선을 내렸다. 나는 삼진이가 내게 무슨 말을 할 때까지 사물함 속에 있는 다른 책들을 꺼내 들었고 계속 찢었다.


삼진이가 내게 욕을 뱉을 타이밍에 맞춰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게 왜 스케치북을 찢어?'라고 말하며 삼진이의 흔들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Image by WOCANDAPIX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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