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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Sep 12. 2023

그녀의 청첩장 02


그녀의 두 번째 연애


희의 두 번째 남자친구는 수가 다니던 교회의 아는 동생의 친구였다. 도 사진으로만 봤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고 했다. 수의 친한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한 범생으로 반듯한 품행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범생이답게 이었다. 사진 속 안경을 쓴 그의 얼굴에서 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댄디한 스타일이었다. 희는 소개팅에서 범을 만나고 그에게 풍덩 빠져버렸다. 

     

범은 여자문제도 없는 데다 자상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제삼자가 보기에도 꽤 괜찮은 남자친구 감이었고, 그 둘의 연애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첫 번째 연애에서 단단하게 데인 희가 범에게 집착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남자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캐묻던 희에게 범은 조금씩 지쳐갔다. 희는 늘 범이 자신에게 무심하다며 투덜 됐다.  

    

어느 날 희의 계속되는 문자에 범이 답장이 없자 희는 범의 SNS로 다이렉트 메시지까지 날려보았으나 답신이 없었다. 희는 시무룩하게 SNS를 둘러보다가 범이 어떤 이의 SNS에 댓글을 남긴 것을 발견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몇 분 전이었다. 희와 범이 동시에 팔로잉하던 사람이었다. 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범이 마음이 식은 것 같다고 헤어져야 할 것 같다며 훌쩍거렸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던 나는 희에게 맞장구를 쳤다. 모르고 그랬다면 멍청한 놈이고, 알고 그랬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놈이라고. 희는 가만히 듣다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며 자신의 남친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나는 희가 캠퍼스에 놀러 온 범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학교 호숫가를 노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까르르 까르르 행복해 보였다. 다음부터 나는 희가 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C) Unplash

     

희의 두 번째 연애는 비교적 무탈했지만 범이 군대를 가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희는 잠시 연애를 쉬는가 싶더니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오빠와 세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이었다.  



그녀의 세 번째 연애


은 희가 만난 남자 중에서 외모적으로는 제일 완벽했다. 배우 원빈과 강동원을 조금씩 섞어놓은 듯한 얼굴에 피지컬은 또 어찌나 좋은지. 외모 보다 인성을 보는 나 같은 사람도 눈을 못 뗄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혁은 길거리 캐스팅도 자주 당해 모아둔 연예기획사 명함으로 책 한 권쯤 너끈히 만들 정도였다. 희는 오빠가 왜 연예인을 안 하는지 의아하다고 했고 나 역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건 그가 연예인이 아닌 인디 밴드 뮤지션으로 음악성을 인정받고 싶은 포부가 있어서라고 했다. 허세가 좀 있구나 싶었지만 속으로만 삼켰다. 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꿈에 대한 그의 열정에 또다시 폴 인 러브. 숨 참고 러브 다이브 해버렸다. 

     

하긴 희가 빠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멋진 남자긴 했다. 희와 함께 찾아간 홍대의 한 소극장에서 그가 기타를 치는 모습에 나 역시 팬이 되어 버렸으니. 음악 하는 남자가 왜 인기가 많은 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생각보다 순수한 남자였고 희에게도 다정했다. 그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은 많았으나 그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깔끔하게 잘라냈고, 여자문제로 희를 속 썩이는 일도 없었다. 희가 연애문제로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일도 줄어들었기에 나는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그와 사귄 지 6개월쯤 지났을까. 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찮았다. 무슨 일인데, 물으니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희가 대답했다. 그가 잠수를 탄 것 같다고.

    

며칠 전 혁은 밴드 멤버들과 함께 자체 음악 앨범을 제작할 계획이라며 희에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단다. 희는 엄마 몰래 통장에서 이백만 원을 찾아 혁에게 빌려주었고, 혁은 돈을 건네받은 지 삼일 만에 핸드폰을 정지시켰다. 그야말로 돈을 들고 튀어버린 것이었다. 정말 최악이네, 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희는 또다시 나를 찾아와 울고 불고 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술집이 아닌 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도 불렀다. 대의명분은 희의 고통을 N분의 1 하자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혼자 덤터기를 뒤집어쓸 수는 없다는 속셈이었다. 에휴. 그만큼 받아줬음 나도 할 만큼 한 거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희는 예전만큼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고 혁이 다시 나타나 돈을 갚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의 순수한 사랑에 박수를 쳐줘야 할지 쪽박을 깨 줘야 할지 판단이 안 섰지만 뭐, 그녀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야. 그렇게 희의 세 번째 연애도 끝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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