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딴짓하는 의대생, 조금씩 환자에게로]
환자와 의사는 가까우면서 멀다.
환자는 의사가 없으면 치료받을 수 없고, 의사는 환자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가 보이는 만큼 볼 수 없고, 의사는 환자가 아픈 만큼 아플 수 없다. 그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가 환자였을 때 느꼈던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은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걸어온 길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병원 침대에서 시작된 길은 대학원으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연구해 논문으로 꽃 피우고 특허라는 열매도 맺었다. 다음 행선지는 의과대학이었다. 학교에서는 사람의 몸을 머리로 배웠고, 병원에서 살과 뼈를 가진 실제 환자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배웠다. 관심 있던 분야의 교수님과 함께 임상 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공학 연구를 하며 논문과 특허를 써봤고, 의학 공부를 하며 임상 논문을 써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아직은 하얀 가운을 입은 일개 의대생일 뿐이었고, 의사로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거나 치료해 본 적도 없었다.
‘나 말고 다른 환자들은 무엇을 가장 불편해하고 있을까?’
순서가 틀렸었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료기기를 개발하려면 그들의 불편함에서 시작해야 했다. 공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뛰어난 기기를 만들어봤자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내 제품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떡 줄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들이켠 셈이다.
가장 가까운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땐 지속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퇴원 후 집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아빠와 등산을 비롯해 이런저런 운동을 닥치는 대로 해봤지만, 그게 맞는 방법인지, 내가 잘 회복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몸의 기능이 조금씩 돌아오는 미세한 신호에 단지 “잘 낫고 있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아빠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퇴원 후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다. 곁에 보호자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받지 못한 채,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에 가는 등 삶의 기본적인 기능조차 서서히 잃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랜 허리 통증, 팔, 다리, 무릎 통증으로 힘겨워한다. 그들은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한다. 혹여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거나 주사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효과는 그때뿐이다. 이들에게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재활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더 나은 치료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별을 바라보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했고, 단단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했다. 그러려면 돈도 필요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 예비창업자 모집공고‘
지원금 최대 1억 원. 직원을 고용하고 구상해 온 사업 아이템을 실험해 보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창업 관련 교육까지 받을 수 있어, 사업 확장은 물론 개인의 역량까지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만은 절대 잃지 말자.’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초심을 지키기로. 방향이 어긋난다고 느껴지면, 언제든 돌이키기로. 타이머를 72시간으로 맞춰두고 사업계획서 작성을 시작했다. 평소 머릿속에서 씨앗처럼 품어오던 사업 구상을 문제 정의, 해결방법, 비즈니스 모델, 시장규모 순으로 하나씩 꺼내어 정리해 나갔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난해한 수학 문제에 빠져든 아이처럼, 빈칸을 메워갔다.
서비스 이름은 ‘리해피’로 정했다. Rehabiliatation (재활)과 Happy(행복)의 합성어였다. 재활치료를 통해 일상 속에서 다시 행복을 찾도록 돕겠다는 내 진심을 담았다.
“안녕하십니까.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예비창업팀입니다.
귀하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진행한 발표평가에 통과하여 ‘선정예정자’ 임을 안내드립니다.”
차가운 수술방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양옆 수술방 안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환자들과,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있었다. 날카로운 칼로 살을 가르고 망치와 정으로 뼈를 부수는 그곳엔 새빨간 혈액이 춤추는 생명의 전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푸른 새싹 같은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 손은 아직 생명을 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내 머릿속은 오직 그들의 삶을 바꿀 방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처럼, 내 마음도 어느새 서늘한 현실 앞에 식어 있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수년간 생업을 접고 이 지원사업 하나에 매달리는 사람도, 최종 선정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단 한 번뿐인 기회일 수도 있었다.
“포기하겠습니다.”
수술방 옆 휴게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의대생 사업가는 의사가 아니다. 환자를 제대로 만나본 적도,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껴본 적도 없다. 나는 아직 환자의 영혼을 어루만질 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진규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서 잘 쓰일 테니 크게 보고 멀리 가자.”
내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향해, 아빠가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학생이던 내게 수천만 원은 분명 큰돈이었다. 하지만 아빠 말이 맞다. 의대에 왔으면 의사가 되는 게 순리다. 눈앞의 반짝이는 기회를 좇기보다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가슴속 ‘가오’도 잃을 순 없다.
조급함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시간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의과대학에서의 4년, 어느덧 그 종착지에 닿았다.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인이 찍힌 의사 면허증을 받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도 결국 끝이 나고 새로운 길로 이어진다. 병원 침대 위 환자였던 내가 국내 대학원, 미국 대학원, 고시원, 의과대학을 지나 다시 병원에 ‘의사’로 돌아왔다.
8년. 넘어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걸어온 시간이었다. 너무 아파서, 너무 답답해서, 너무 불안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예상치 못한 기쁨에 참 많이도 웃었다.
환자였던 나는 공학자였고, 이제 의사가 되어 다시 환자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런 단어들만으로는 지난 세월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무엇이든 진실을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한다.
나는 차트 속에 숨은 사람을 보는 법을, 청진기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진료실 의자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그 거리를 온전히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 있다.
이제 내 손에 들린 청진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환자의 심장소리뿐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와 아픔, 두려움과 희망까지 듣기 위한 통로다. 차트에 적힌 숫자와 의학용어 너머에 있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기 위한 렌즈다.
아픔을 경험한 의사가 되어, 이제 나는 안다. 치유란 단지 몸의 회복만이 아니라 일상으로의 온전한 귀환임을.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걸어갈 의사로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