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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구멍 Feb 28. 2023

휘트니 휴스턴의 모든 것

OST로 듣는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2022)>

  2012년 2월 11일 오후, 그래미 어워드 전야 파티를 앞두고 분주하던 LA 비버리 힐튼 호텔 라운지에 이방인처럼 홀로 앉아있던 휘트니 휴스턴에게 나이 지긋한 바텐더가 사인을 부탁하며 말한다.

  “I saw you live once, in '94. The American Music Awards. Girl, you did that medley of songs. That's the greatest performance I've ever seen. As far as I'm concerned, you're the greatest of all time. 당신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요. 94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요. 그때 당신이 부른 메들리는 제가 본 공연 중에 단연 최고였어요. 내가 아는 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는 바로 당신이예요.”     

  전설적인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생애를 다룬 전기영화 <Whitney Houston: I Wanna Dance with Somebody>는 바텐더가 말한 바로 그 공연, 1994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에서 그녀가 메들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메들리 공연이 끝난 후 이 세상에서 맡은 모든 임무를 마쳤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흑인 디바의 원조 격인 니나 시몬의 재즈넘버 <I Loves You, Porgy>로 시작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드림걸스’의 히트넘버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거쳐 자신의 히트곡 <I Have Nothing>으로 끝나는 10분간의 메들리는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들어도 전율이 느껴진다. 하지만 2012년의 휘트니는 더 이상 1994년의 그녀가 아니었다. 감사의 의미로 샴페인 한 잔을 선물한 바텐더를 향해 휘트니는 쓸쓸하게 읊조린다.

  “But it was... It was 18 years ago. 하지만 그건... 벌써 18년 전 일인 걸요.”  

   

  휘트니 휴스턴의 다사다난했던 일대기를 짤막한 에피소드별로 나열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그녀가 마약과 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 대해서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스쳐 지나가버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휘트니 휴스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그녀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녀의 음악에 울고 웃으며 젊음을 보낸 사람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한 번에 연달아 듣고 싶다거나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고 싶다면 차라리 영화의 OST 앨범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track.04_The Greatest Love Of All

  가스펠 가수였던 엄마 씨씨 휴스턴을 따라다니며 클럽에서 백보컬로 활동하던 어린 휘트니 휴스턴이 그녀를 가수로 발굴하고 역사상 최고의 디바로 만들어준 아리스타 레코드의 회장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노래.      


#track.14_Home (Live from The Merv Griffin Show)

  브로드웨이 뮤지컬 <The Wiz>의 삽입곡이자 1983년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무대였던 <머브 그리핀 쇼>에서 그녀가 불렀던 노래. 노래가 끝난 뒤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함께 토크쇼의 진행자이자 미국 연예계의 대부였던 머브 그리핀은 TV 시청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휘트니 휴스턴! 여러분은 앞으로 이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track.24_The Star Spangled Banner (feat. The Florida Orchestra) (Live from Super Bowl XXV)

  휘트니 휴스턴이 91년 제25회 수퍼볼 개막식에서 트레이닝 복에 머리띠를 두르고 제창한 미국국가. 당시 TV를 시청하던 전 미국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녀의 파격적인 의상에 놀란 마음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창법의 미국국가를 들으며 뒤로 나가 자빠졌다고 한다. 정형화된 국가 제창의 창법을 뒤흔들어버린 그녀의 노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 제창 퍼포먼스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모든 가수들은 국가를 부를 때마다 그녀의 창법을 레퍼런스로 삼게 되었다. 인종과 계급을 넘어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 미국인의 가슴에 국뽕을 넘쳐흐르게 만들어버린 전설적인 라이브.   


#track.25_One Moment in Time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휘트니 휴스턴에게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진심어린 걱정과 충고를 전한 뒤에도 여전히 무리한 공연 스케줄을 강행하는 그녀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힘겹게 부르는 노래. 199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앨범으로 발매된 싱글답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애절한 가사가 이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휘트니 휴스턴의 처지와 딱 맞아 떨어지지만 무심한 하늘은 그녀의 간절한 기도를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    


#track.26_I Will Always Love You (Live from The Concert for a New South Africa)

  영화 ‘보디가드’의 OST이자 휘트니 휴스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 1994년 남아공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 기념 콘서트에서 부른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라이브 버전을 기점으로 영화는 가수로서 여자로서 비극의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휘트니 휴스턴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후 <It's Not Right But It's Okay>, <I'm every woman>, <I'm Your Baby Tonight> 등 흥겨운 댄스넘버가 연달아 흘러나오지만 그녀의 실패한 결혼생활, 마약과 술에 찌든 불행한 모습 등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막다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운명과 교차되면서 오히려 슬프게만 느껴진다.


  마치 “난 누군가와 함께 영원히 춤을 추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디 날 위해 울지 말아요.”라고 말하려는 듯 OST 앨범은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현대적인 리믹스 버전으로 시작해서 <Don't Cry For Me> 아카펠라 버전으로 끝난다. 울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면 이번 OST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싱글 <Far Enough>와 그녀의 동반자였던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추모 메시지는 부디 건너뛰길 바란다. 생전의 그녀답지 않게 현대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의 멜로우한 그루브가 넘쳐흐르는 <Far Enough>,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눈물 젖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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