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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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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4. 2023

비행#7

한 타일공의 이야기

오늘은 일을 쉬는 날이었다. 의뢰받은 작업이 끝나면 쉬는 방식으로 일을 해서 쉬는 날도 규칙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 기왕 쉬는 거 푹 쉬고 싶었는데, 나는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제, 그제 있었던 일을 되새기고 그것과 비슷한 여타 다른 실수들을 떠올리느라 계속 괴로워했다. 아무리 되새겨도 계속해서 과거에 했던 실수가 쏟아져 나와 도저히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집중할 다른 일이 필요한데, 나는 취미도 뭣도 없어서 다른 데에 정신을 돌릴 수도 없다.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쐬며 걸으면 나아질 것 같은데 밖으로 나갈 기력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수많은 생각에 지쳐 괴로워하며 가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밤새워 뒤척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어두운 방 안이었다. 검은 목티를 입은 남자는 얇은 벽으로 나누어진 방의 건너편에서 이불속에 들어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얇은 벽 이쪽 편의 방 한쪽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대화도 없었다. 가끔 식사를 각자의 방에서 먹었다. 그리고 가끔 깜박깜박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더 이상 이곳이 꿈속 인지 현실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남자는 낡은 양복 재킷을 걸치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리저리 방황하듯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서는 화려한 타일로 외벽을 장식한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섰다. 옥상에 서 있는 그자가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아, 저 사람은 이상이구나. 날아오르려 하고 있구나.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날개가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날아올랐다. 하늘로, 태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누구나 비행은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렇다. 이상은 날아올랐다. 기어이 날아올랐다. 비행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지 않고. 그의 소설 말미에 그렇게 썼다. 날아보자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상처럼 글을 써서 날아오르는 재주도 없으니 기꺼이 직접 날아오르는 수밖에. 나도 날 수 있다. 끝을 상상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날아오를 수 있다.


꿈에서 깼다.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어깻죽지가 이상하게 가려웠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서서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꿈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의 그 황당하고 괴로운 꿈들을. 나도. 나도 날 수 있을까. 끝은 생각하지 말자. 상상도 하지 않으면 나도, 날아오를 수 있다. 


발을 뗐다.

          



*이상의 ‘날개’ 중 일부 인용

*위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에 관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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