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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5. 2023

무던한 사람#2

타인이라는 존재는 이 사람에게는 너무 먼 것이었다. 친구라는 존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떻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감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경험해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으니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이때쯤 되어서는 친구가 다들 하나쯤은 함께 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서 스스로는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그들에게 답을 주곤 했다. 그러나 상대는 곧잘 뻘쭘해하며 멀어지기 일쑤였다. 예컨대, 처음 만난 또래들이 “너는 예능 같은 거 뭐 보니?”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텔레비전은 잘 보지 않는다.”라고 답하고는 했다. 이는 솔직하고 나름대로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인 대답이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아, 그렇구나.”가 전부였다. 그러고 그들은 멀어졌다. 어릴 적과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 자체가 어색했던 이 사람은 이내 다행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다른 이들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아도 역시나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신나게 웃으며 무리 지어가는 그들을 보면 대체 무엇이 그렇게나 즐거울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은 들었지만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다른 이들도 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학교 동아리 시간에 이 사람은 선생님께서 따로 시키신 일을 하느라 약간 늦게 동아리실로 갔다. 지각을 한 탓에 얼른 움직여서 교실에 도착했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은 동아리 시간 내내 혼자 교실에 앉아있었다. 아무도 이 사람을 찾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다들 활동을 위해 이미 다른 장소로 이동했던 것이었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의 자리를 겨우 차지하며 그렇게 지냈다.


그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고 이 사람은 그것에 충실히 따랐다. 남들보다 1.5배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어머니께 보여 드릴만 한 성적이 나오고 흔히 학생들이 수강하는 학원이나 과외와 같은 여타의 투자도 없어 간간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할 뿐이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잘 몰랐다. 잘 해야 하는 이유는 더 몰랐다. 이유를 생각할 필요를 몰랐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다들 하는 것이고, 다들 하라고 하니 다만 할 뿐이었다.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일을 하면서 힘들 만큼 이 사람이 자기의 생각이나 마음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괜찮은 대학에 입학했다. 이름을 대면 열에 다섯은 아는, 꽤 괜찮다고 평가되는 대학이었다. 이 사람은 취업이 잘 되고 미래가 유망하다며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학과에 지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 흥미가 있는지는 몰랐다.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고려한 경험이 없었고 그런 것이 필요한지, 중요한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또 다른 큰 고민거리의 시작이었지만 이 사람은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대학교가 원래 살던 곳과 다른 지역에 있어서 자취를 시작했다. 작은 단칸방에서의 생활은 어려운 것이 없었다. 본가에서 지낼 때도 방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고,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언제 집에 들어올지 몰라 불편하던 생활보다는 오로지 혼자 있는 공간에서의 생활이 훨씬 나았다. 이 사람에게는 가족도 마주하기 어려운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래서 혼자가 편했다. 


대학을 다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었다. 수강 신청을 해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길다면 긴 한 달 반가량의 방학은 조금 고민스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한다는 자격증과 어학 시험을 준비했다. 이를 어디에 쓸지는 명확히 몰랐으나 마땅히 해야 할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면 되었다 싶었다.


이 사람은 여러 군데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성인이 되었으니 네 삶을 스스로 꾸려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상 부모라는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 그들의 의중을 읽어 낼 만큼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하게 맞는 말이라 생각했고 그저 따랐다.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은 종종 피곤했지만, 이 사람은 눈앞에 닥친 일들을 열심히 해내었다. 그러지 않으면 학교도 다닐 수 없고, 지금 사는 방의 월세도 낼 수 없고, 당장 한 끼를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면하기 위해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이 사람은 손님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고 몇 번 이에 관해 문제가 생기자 카운터에서 밀려나 주방에서 단순히 설거지만 반복적으로 하게 되거나, 해고당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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