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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7. 2023

무던한 사람#5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얼른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말에 이내 일러주신 곳에 도착했다. 병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상복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하면서도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하면서도 이 사람은 울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 일이라는 생각을 할 찰나도 없었다. 처음 해 보는 일들에 정신이 없었고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술에 취해 크게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이 사람에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자꾸만 숨이 차 얼른 호흡을 정리하는 것에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어쩐지 자꾸 호흡이 가빠졌다. 그렇게 3일을 보내고 봉안당에 유골함을 안치한 후에야 어머니께서 영영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잠에 들었다. 사흘간 거의 쉬지 못했더니 절로 잠이 왔다. 불행은 여전히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날, 처음으로 이 사람의 그림이 판매되었다. 그림을 취미로 하는 사회인들이 모여 작은 전시를 연다는 공고를 보고 이 사람도 그곳에 출품했다. 거기에서 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든 사람이 그림을 판매할 것을 제안했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았던 이 사람은 동의했다. 조금이나마 수입이 더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이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조금 기뻤다. 자신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니. 마음에 들어서 기꺼이 돈을 내 구매까지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니.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상과 행운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은 언제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 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돈이 많이 들었다. 물감, 도화지, 캔버스, 새 붓들을 계속 사기에 지금의 수입은 부족했다. 그러면 그림을 그만둬야 할까? 건강상의 문제와 인간관계 문제로 입사해서 일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 사람이 가지게 된 고민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일을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 장벽이 결코 쉬웠던 적은 없으나 이번만큼 막막하기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평이했다. 앞서 말했듯, 현실은, 이 삶은, 이 사람에게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흘러가는 삶에 조금 더 큰 고민일 뿐이었다.


그림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 사람은 다른 방안을 찾고자 했다. 전에 그림이 팔렸던 것을 생각하며 그림을 팔아 그림을 그리는 데 보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우연과 행운에 기대기에 이 사람의 삶은 상당히 불운한 편이었다.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팔린 것도 생계에 도움이 될 만큼의 금액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개 이 사람의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고 했다. 구도나 색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런 감격, 환희, 슬픔이나 절망과 같은 감정이 표현되지 않은, 색과 선이 덧그려진 종이. 이런 느낌이 독특하다며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아주 싼 값을 불렀고 대부분은 의아해하며 멀어졌다. 이 사람은 대체 그림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 감정에 가득 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붓에 담아 종이에까지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무렵 이 사람은 앓아누웠다. 자꾸만 온몸에 열이 나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져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열이 오른 머리로 혼자 멍하니 누워있던 이 사람은 다시 죽음을 만났다.

“삶의 이유는 찾았는가?”

이 사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죽음이 다시 말했다.

“찾을 의사는 있는가?”

이 사람은 이 질문에도 역시 답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의지라는 것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쉬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부족하여 우유부단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나와 가겠는가?”

죽음은 다시 물었다. 이 사람은 이 역시 답하지 못했다. 죽음이 자신을 데려간다면 갈 것이었고, 내버려 둔다면 어찌 다시 살아갈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죽음은 가볍게 웃더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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