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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7. 2023

무던한 사람#6

이상한 꿈을 꾼 후 이 사람은 며칠을 더 누워있었다. 꿈을 꾼 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삶의 이유와 같이 너무 광범위한 주제는 아직 이 사람에게 전혀 와닿지 못했기에 우선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저 재미있어서 그림을 그려왔는데 이 때문에 이토록 힘이 든다면 이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이를 계속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으나, 이는 삶에서 한 행위 중에 유일하게 재미있는 것이었으므로 그만두겠다는 결정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몸이 낫고 나자 아르바이트를 늘렸다.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을 늘리자 자연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줄었고, 그림에 드는 비용도 줄었다. 모순이었다. 이같은 불행은 면전에서 빙글거리고 있었으나 여전히 이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이 사람은 다시 직장에 들어갔다. 그림을 그만두지는 못했으나 이전의 평가를 마주한 이후로 대체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그전에는 어떻게 그렸는지, 그렇게 그리는 것이 맞는지를 알 수 없어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감정이 결여된 것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가져가기에는 이 사람이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러한 화풍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설명할 만큼의 화술도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감정도 이야기도 담겨있지 않은 형형색색의 종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잃은 이 사람은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새로운 방식을 찾기에는 이 사람의 경험이 너무 적었다. 감정적 동요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림에 드는 돈이 줄어 꼭 일을 할 필요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이런 시간에 일을 더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하여 입사를 했다. 일은 별다른 생각이 필요 없는 아주 단순한 사무 업무였다. 회사에 다니자 그림을 그릴 시간은 더욱 줄었고 이 사람이 삶에서 느껴본 유일한 즐거움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어느 날 이 사람은 건강검진을 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냥 넘겼지만 사고를 당하고, 거하게 앓아누운 후로는 한 번쯤 몸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진을 받았다. 꽤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다. 특히, 폐 기능 향상을 위한 치료와 약 복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늘 제 기능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던 기관이라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어쨌든 약을 받아왔다. 건강을 위해, 자신을 위해 꾸준히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꽤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을 하다 알게 된 사람이 이 사람에게 따로 만나서 식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어색한 상황을 구태여 견딜 필요를 느끼지 못해 거절했다. 이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누군가와 단둘이 식사를 해 본 적도 없어 너무 부담이 큰 자리였던 것이다. 상대방은 머쓱해하며 물러났고 이 사람은 그 사람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의를 기울였다 해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결코 몰랐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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