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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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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Feb 21. 2023

어떤 여정#1

지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다들 열심히 사는 것일까? 바쁘게 돌아가는 주변 세상의 분위기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이후로 이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 사람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소위 말하는 사회 부적응자이고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그런데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인생을 비관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름대로 괜찮게 살았던 것 같은 아득한 옛날에는 대체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방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다들 자신을 보고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다들 자신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불 속 공기는 한정되어 있고 그 탓에 가끔 숨이 막히곤 했지만 이런 꼴로 아직 살아있는 자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꽤 합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불을 걷지 않았다. 그냥 숨을 죽이며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 사람은 가끔 먹었고, 가끔 잠들었다. 그 외의 시간에는 내내 생각을 했다. 이대로 잠들어서 영영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대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 한 것도 없이 피곤하기는 더럽게 피곤하다는 생각, 자신은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 생각, 생각. 이런 생각들은 점점 어두워지기만 해서 이 사람을 점점 심연 속으로 당기기만 했다. 이 사람은 이를 그저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래야 할 사람이라고. 응당 심연에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해야 한다고. 심연은 킬킬 웃으며 이 사람의 숨통을 조였다. 소리 없는 비명이 방 밖으로 흘러넘쳤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계속 가만히 누워서 생각만 했다. 생각, 생각, 생각 그리고 심연. 


어느 날 이 사람은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꿈속에서 이 사람은 이불속에 숨어들어 숨 죽이고 누워있었다. 다만 온몸이 웅크린 그 자세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괴로웠으나 움직이려고 버둥거릴 의지도 없었으므로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깼다. 여전히 이불 속이었다. 자세를 바꿔 돌아 누웠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었다. 꿈에서는 방금 뒤척인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고, 또다시 움직일 수 없었다.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깼다. 잠시 후 다시 잠에 들고, 다시 깨고, 다시 잠에 들고. 몇 번을 반복했다. 어떤 순간에는 꿈에서 깨고도 가위에 눌린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꿈에서 깨고도 이 사람은 지금 이곳이 현실인지 꿈 속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더 이 상황을 반복한 후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팔뚝을 세게 꼬집어 보고 찌릿하는 고통이 느껴지자 그제야 이곳이 현실임을 알았다. 현실임에도 별 다른 움직임을 할 의지가 없는 이 사람은 다시 멍하니 생각했다. 악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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