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 아파서 온 것은 아니지만 보호자와 환자를 대하는 "진료" 업무를 "진짜"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예방접종 업무를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주사 한 두 대 맞춰주면 끝나는 아주 단순하고도 쉬운,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는 기초적인 일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물에게 있어 예방접종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주기적으로 이 말 못 하는 털복숭이들의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자신이 아픈 것을 감추려 합니다. 아주 조금씩 이상이 누적되어서 평소에 잘 티가 나지 않다가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 한 번에 빵 하고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민한 보호자는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주는 보호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동물을 병원에 데려가는 보호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매년 보강접종을 하러 올 때 아주 정밀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통해 건강을 체크해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하러 온 동물들을 주사만 주고 돌려보내는 수의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최소한 청진을 해서 심장과 호흡에 이상이 없는지 보고, 문진을 통해 평소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확인하고 도와주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예방접종하러 왔다가 다른 이상이 발견되어 추가적인 검사를 받고 처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보호자도 병원 가는 김에 이것저것 물어볼 것을 싸들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방접종도 그렇지만 기본 신체검사를 할 때도 알아야 하는 게 많습니다. 아직 미숙한 인턴수의사는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방접종 외 문제가 발견되어 처치나 약 처방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만큼 경험이 쌓이는 것이고 진료 영역이 확장되는 셈이 되니 인턴에게는 속된 말로 개이득입니다.
이렇듯 예방접종은 그 자체가 지닌 의미에 더해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인턴 수의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의 장이 됩니다.
내일은 이틀 쉬고 출근하는 첫날이라 너무 많이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많은 친구들이 백신 맞으러 오길 바라봅니다.… 이제 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