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딘가에 염증이 있는 경우, 적절한 안약을 선택하기 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검사가 있다. 바로 형광염색이다.
친수성인 이 염색약은 정상적인 눈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각막이 손상되어 기질층이 드러나있는 경우, 염색되어 파란빛을 비추면 밝은 초록색을 띤다.
만약 이렇게 각막 손상이 있는 경우,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는 안약을 쓰면 안 된다. 상처 회복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반려견이 눈곱이 잘 낀다고 하여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눈을 들여다보았더니 특별한 이상이 없어 보였다.
"각막에 상처 없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OOO 안약 주세요"
스테로이드가 든 안약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광염색 해야죠. 선생님 연차는 아직 눈으로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이었다.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다면 왜 귀찮게 그 검사를 하고 있겠는가…? 더구나 임상 6개월도 안된 풋내기가 감히…
바로 형광염색 검사를 했다. 다행히 내 추측이 맞긴 했지만, 틀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원장님의 따끔한 한 마디가 잘못된 내 태도를 깨닫게 했고 다시 그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었다. 참 감사할 따름이다.
형광염색뿐 아니라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괜찮겠지, 적당히 대충 하고 넘기는 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도 있겠으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렇지 않다.
꼼꼼하게 확실하게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애꿎은 반려동물이 괜히 더 고통받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의 보호자 역시 아파하는 동물들로 인해 더 힘들어질 수 있고, 안 써도 되는 돈을 불필요하게 더 지출하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 경험이 더 많이 쌓이더라도, 다 아는 거라 하던 대로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닌 기본적인 검사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수의사가 되려 한다.
그것이 동물들과 보호자들 뿐 아니라, 수의사인 나에게도 반드시 이로운 길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