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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17. 2024

10월의 어느 시린 날에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지만 2024년 10월은

내게 너무 잔인하고도 시린 날들의 연속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1, 우리 엄마가 피해자로서 첫 번째 공판이 있었고 (20240926) 그 여파는 10월까지도 계속되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자식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사건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우리 가족을 믿고 지지해 주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한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

내가 사랑하는 사람 2, 막내 이모의 위암선고.

초기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수술해 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봐 한참을 숨겼고 뒤늦게 알게 된

나는 너무나 먹먹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생계를 위해 늘 바빴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나를 자기 딸처럼 여겼던 막내 이모의 사랑이었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조카가 생기다 보니 막내 이모가 날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생각해 보니 결혼을 반대했던 이모부와의 데이트에도 줄곧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단 모든 가족들에게는 비밀이었고 어린 나는 그 약속을 잘 지켰다), 이모는 화곡동 옥탑방에 살면서도 시골 사는 나에게 서울 학원을

다니게 해 주며 방학 때마다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렇게 성장하여 어른이 된 나는 청계천 길 중고 책방을 지날 때도 그 책방에서 이문열의 삼국지 시리즈를 사주었던 막내이모가 생각났고, 딸과 에버랜드를 가서 사파리 구경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함께 줄 서서 기다렸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막내 이모생각이 났다.

올 초 뉴욕 여행에도 나는 내 조카를 데려갔는데, 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막내 이모가 생각나, 늦었지만 너무 고마웠었다고 문자도 건넸다. 그게 얼마나 쉽지

않는 일이었던지를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 이모와 나의 관계는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무언가가 있었다. 몇 년 동안 외가 가족들 간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막내 이모는 모질게도 나와의 연락을 거부했고 그런 나는 청천벽력이 무너질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와 이모는 그동안 생이별을 했지만 이모는 그 시간 동안 나보다는 몇 배 더 힘들고 아팠나 보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시간 동안 그 병이 생긴 것 같아 더 미안했다.


그때 이모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원래의 이모와 나로 돌아왔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자리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모의 병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모의 병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를 멍하니 보내고 그다음 날 우리는 서로 통화하며 펑펑 울었다.


2024년 10월은 내게도 참 잔인한 달이다.

학교에서는 일도 많아 여기저기 일에 치이고, 서울-강원 출퇴근도 만만치 않아 육체적으로 지친 나에게

엄마의 공판, 막내 이모의 암 선고는 너무나 잔인했다.


11월은 더 잔인할 것이다. 엄마가 피해자가 되어 증인으로서 재판, 작은 이모의 수술.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20대에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에 비하면 30대에는 더 혹독했고 30대보다 40대는 더 혹독하고 잔인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그랬듯, “전쟁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무슨 잔치냐” 너무나 공감하고 시의 적절하게 우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명언이다.


나는 그동안 잘 살아왔고 아무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지만 나만 잘 산다고 마냥 행복할 나이가 아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나이기도 했고,  그 책임을 덜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힘들지언정, 나만 생각하자는 이기적 생각은 진작에 버렸두었다.

사실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나는 당장 다음 주, 막내이모의 수술 전 막내이모와 딸, 큰 이모와 딸, 우리 엄마와 나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나도 할 일이 태산이지만 내일을 잠시 미루고서라도 나의 삶에 더 가치 있는 시간에 나를 보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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