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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Oct 27. 2024

집수리 현장에 '고교동창'이 찾아왔다

'귀인 같은 전문가 친구' 덕에 편하고 안전한 집이 만들어졌다


▲ 새롭게 단장된 화장실, 화장실에는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바가 설치됐다



지난 5월 동네 집수리 업자의 공사계약서와 내역서를 검토하고 계약체결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경배가 갑자기 집수리 현장을 방문하겠다며 연락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구와 산행을 하면서 내가 집수리를 조만간 할 계획이라는 말을 건넸는데 그걸 기억하고 전화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잠시 당황했지만 친구는 방문하기에 앞서 공사계약서와 내역서 를 보자며 보내달라고 했다. 지금도 건축 리모델링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이기에 참고가 될 것 같아 자료를 보냈다.



며칠 후 집을 방문한 친구는 현장을 한바퀴 들러보고 대뜸 집수리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사비도 늘어날 것이라 말했다.



친구는 "이번에 집을 고치면서 몇 군데 더 손을 보고 나서 공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돈은 돈대로 더 들고 후회만 남을 수도 있다"며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래서 당초 방 2개와 화장실, 건물 외벽 방수공사만 하려던 공사를 애들 방과 주방, 거실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친구는 "무엇보다 이번 리모델링은 노인들의 동선과 안전을 고려한 쾌적한 공간을 확보해 더 이상 대수선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을 하기로 한 시공업자도 친구가 제시하는 방문턱을 없애고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배관 연장 등 오래된 집에 요구되는 기술적인 사항들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집수리 공사예산은 당초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현장에 문외한인 나는 친구 제안에 동의하고 업자는 업자대로 공사비가 늘어나 반기는 표정이었다.


▲ 거실 공사, 신발장 등 수납공간을 확대했다



이어 친구는 공사업자에게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해서 그때그때 서로 논의하고 나 대신 공사를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친구가 집주인처럼 앞장섰다.



최종 공사내역도 친구가 일러준 대로 바뀌어 체결됐음은 물론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한 것은 결코 아닌데 친구는 공사에 필요한 모든 걸 세심하게 일러주었다.



친구가 현장을 다녀가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철거가 시작됐는데 친구는 현장에 또 나타났다. 철거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벽과 천정의 도배지를 뜯어내면서 그간 골치를 썩인 누수의 원인과 범위를 확인하고 친구는 습기가 특히 심한 벽쪽에 방수 석고보드를 추가해 줄 것을 업자에게 요청했다.



      

▲ 습기가 심한 방벽에는 친구 조언대로 결로를 막는 방수석고보드를 추가했다



이후 친구는 자기가 관리하는 건설현장이 있음에도 시간을 내 우리 집을 수시로 찾아와 시공업자와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로선 곁에서 친구얼굴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나 대신 친구가 이런저런 시정을 계속 요구하자 짜증이 나는지 업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집주인하고만 대화를 하겠습니다"



친구가 더 이상 공사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 업자로서는 숙맥인 나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편한데 일일이 간섭하는 친구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에게 현장에 그만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는 내가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아서 척척 알려주었다. 나로선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친구가 반가우면서도 미안했다.



업자에게 내 친구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나는 업자에게 친구가 하는 조언은 참고할 뿐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인 멘트에 불과했다.



사실 친구가 하는 말은 틀린 것이 1도 없다. 업자는 친구의 설득력 있는 여러 지적에 어떨 때는 자신의 기술력에 자존심이 상한 듯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정말 귀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친구는 막막한 안갯 속에서 햇볕처럼 빛났다. 업자는 노골적으로 친구의 방문을 꺼렸지만 나는 친구와 업자 중간에서 표정관리하기 바빴다.



친구는 공사책임자와 대화 중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이 친구가 공사를 전혀 모르는 서생인데 친구인 내가 대신 돕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여기서 서생은 나를 말한다. 그러자그 말은 들은 업자는, 진심을 다하려는 친구가 부러운 듯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리모델링 현장에서 집주인이 전문가 못지않게 정통하면 업자들이 무시하거나 장난치지 못한다. 리모델링을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 주방 철거작업, 거실을 터 주방을 확대하는 공간구성을 했다



친구는 공사현장을 지키는 내가 미덥지 못하고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사실 모든 게 어렵고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은 비가 종일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데 친구가 느닷없이 왔다. 친구는 "비 올 때 누수 문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우리 집을 오가면서 공사 현장의 설계도를 직접 그리고 각종 인테리어 배치와 구조, 제원 등을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정성과 치밀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친구는 고교동창이다. 학창 시절 농구선수였다. 그가 인테리어와 건축업계에 뛰어든 것은 직장생활까지 포함하면 30년이 넘는다. 운동했던 센스에다 열정은 이 나이에도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더라도 남을 돕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인생을 살면서 친구를 도울 기회가 있어도 소매를 걷고 도와준 기억은 별로 없다.



내가 친구 입장이라면 친구처럼 업자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결코 돕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다. 아니 그럴만한 용기와 자신감이 솔직히 없다.


      

▲ 거실 철거작업, 방문에서 문턱을 없애 낙상사고를 방지하는 조치를 했다



친구는 사건을 해결하는 변호사 같았다. 높은 방문턱을 낮춰주고 위험했던 화장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안전바를 설치하도록 도와주었다. 친구는 노인들이 오래 편히 살 집을 늘 고민하는 것 같았다.



친구는 7~8번이나 집수리 현장을 찾아왔다. 공사를 마친 지금도 하자가 없는지 자주 묻는다. 친구를 인정(人情)만으로 도울 수 없고 실력도 갖추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친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나는 이번 집수리를 하면서 새 집 못지않게 둘도 없는 친구도 새삼 얻었다. 새 단장한 집에 사는 동안 우리집 식구들은 친구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친구야 정말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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