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집수리> 연재를 마치며..평생 살 집을 고민했다
최근 친구들과 이런저런 모임으로 외출했다가 리모델링한 집을 생각하면 귀가하는 발길이 바쁘다, 이렇게 서둘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어릴 때 느끼곤 정말 오랜만이다.
이 말에 사연 모르는 독자들은 왠 뚱딴지같은 소리야 할지 모른다. 3개월 동안 수리한 집이 전에 없이 정이 가기 때문이다. 그 이전만해도 우리집은 40년 이상 오래돼 불편하고 주방과 화장실은 창고나 다름 없었다.
지난 6월 집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10월 말 공사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진작 수리를 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해서 이런 배경과 사연을 지난 8월부터 연재기사로 써왔다.
리모델링이라고 큰 규모는 아니었다. 눅눅한 방, 비좁은 주방과 거실, 창고 같은 화장실을 고쳤는데 그럴듯한 새 집이 탄생한 것이다. 새집 효과가 얼마 갈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집을 수리하면서 안팎의 걱정이 많았다.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리모델링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 표정을 지었다. 연락이 끊겼던 친척들도 "힘든 일로 고생한다"며 안부와 연락이 잦았다. 하지만 내심 반갑고 고마웠다.
집수리는 우리 나이에 사실 '인생의 모멘텀'이었다. 공사하면서 가족들이 집을 떠나 한 달여를 셋방살이 했는데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폭염에 에어컨 없는 월세 빌라에서 지내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버텨낸 것은 기적이었다.
아내는 공교롭게 집수리 기간에 손목과 몸이 아파 병원을 자주 다녔다. 당시 나는 안타깝지만 공서현장엔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차도가 있어 지금은 조금 회복해 다행이지만 그때는 비상이었다.
이제 새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즐겁고 집은 몸과 마음을 다독일뿐 아니라 행복한 휴식공간이라는 시실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식구들은 곧 닥칠 겨울에도 예전처럼 추위를 걱정할 것 같지 않다.
회고하면 좋은 일도 많았다. 바뀐 환경에서도 아무 사고 없이 경로당을 오가신 95세 아버지가 무엇보다 감사하다. 아버지가 그나마 건강하시기에 집수리도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8월 말 낭보도 있었다. 한 달 평균 4번을 내원해 항암치료를 하는데 주치의가 기쁜 소식을 알렸다.
"환자분은 치료성적이 좋아 이제 항암주사를 중지하고 예후를 당분간 지켜보겠습니다"
채혈과 주사, CT 등으로 병원 가는 일이 늘 두려움과 스트레스였는데 주사에서 해방된다니 날 것만 같았다. 집수리를 시작할 때 산란했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으며 암치료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감사하다. 공사 중 낙상하거나 부상당하는 소식을 흔히 접하는데 전혀 없었다. 내가 곁에서 잔소리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8월 초 '서프라이징' 한 소식도 들렸다. 집수리 때문에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글쓰기 동력이 너무 떨어져 고민했는데 내가 '오마이뉴스' 상반기 '뉴스게릴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지 내 살을 꼬집었다. 아팠다. 소진됐던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이후 용기를 내 오마이뉴스에 다시 글과 기사를 올리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맥가이버'는 아니어도 가벼운 집수리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못하나 박을 줄 몰라 아내에게 무조건 시켰던 '젬병'이 인테리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둘 수 있게 됐다.
향후 집에서 구석구석을 살피며 손 볼 곳은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기로 다짐했다. 사는 집도 사람처럼 평소 고치고 꾸며야 보기 좋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수리는 '종합예술'이다. 감각과 기술이 총동원돼 하나의 예술이 만들어지는 걸 현장에서 시종 지켜보고 느낀 결론이다. 집에 활력을 불어넣는 리모델링 업자들이 새삼 달리 보인다.
집수리는 처음에 업자 뜻대로 시작했지만 시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정과 변경이 있었다. 이에 평소 놓치기 쉬운 문제들이 개선됐다. 여기엔 고교동창인 친구의 세심한 조언이 한몫했다.
리모델링의 최종 마무리는 도배와 장판이다. 천장과 벽, 마루 시공을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업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배가 들뜨기 때문이다. 도배업자가 추천하는 건축 리모델링 업체들의 능력과 평판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현장을 찾은 것도 우연이지만 추억거리다. 아이는 집수리를 반기면서 새 집에 필요한 인테리어를 추천하고 주방에 어울리는 편리한 '쓰레기통'을 구입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네 집수리 공사업체 김 사장의 수고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할 사람이다. 공사중에 그에게 본의 아니게 이래라저래라 많은 잔소리를 해서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속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님 고향이 같은 이북이고 홀로 사는 어머니와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한다는 말에 나는 그의 진정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노후에 살 행복한 집은 어떤 곳이며 편하고 안전한 집에 대해 내 나름의 안목이 생겼다.
집이란 무엇인가. 난 사람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하는 곳이라 정의한다. 집을 고치면서 '안식처'의 의미도 여러 번 곱씹었다. 최근 노후를 맞아 '재가임종' 제도 논의가 시작됐는데 집이 본연의 역할을 찾아가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이번 연재를 하면서 백세 노후에 대비한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과 결속이 보다 강화된 것은 집수리 못지 않은 큰 수확이다. 앞으로 애들도 새 집을 자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노후에 사는 집은 결코 돈으로 사는 집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 글이 은퇴 했거나 앞두고 있는 베이비부머의 노후설계에 다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