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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이노 Jan 19. 2024

길 하나 차이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노동의 배신'


어제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식탁 위협에 대해 글을 썼으니, 오늘은 미국에 대해 써보려 한다.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과 미국 급식을 바꾼다고 할 때 나는 굉장히 놀랐다. 그동안 아이들이 학교 점심 급식으로 싸구려 치즈 피자, 감자튀김, 초콜릿 바를 먹고 설탕 음료를 물처럼 마셨다니, 정말 괜찮은 건가?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매점에서 커피도 안 팔았는데... 드라마 '빅뱅 이론'에서도 대학교에 근무하는 등장인물들은 점심마다 탄산음료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건강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포장 음식을 저녁으로 먹는다. (그래도 샐러드는 자주 먹는 걸로 보인다.)


인종별 췌장 차이는 잠깐 미뤄두자. 누가 뭐래도 칼로리와 당류가 높은 음식은 건강에 안 좋다. 자연식품에서 멀어질수록 건강에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실상 저렴하고 몸에도 좋은 인스턴트식품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게임 '심즈'에서 무일푼 플레이를 하듯, 일상에서도 절약이라는 게임을 은근히 즐기는 내가 즐겁게 본 글이 있다. 바로 김야매님의 '미국에서 끼니 때우기' 시리즈다. 그 유명한 피넛버터 앤 젤리(잼) 샌드위치부터 셰프 보야디 통조림, 캠벨 스프, 트윙키, 맥앤치즈, 각종 냉동 음식 등으로 저렴하게 끼니를 '때운' 모습을 담은 글들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음식들인데, 내가 미국 여행길에 마트에서 사 왔던 저렴한 음식들은 하나 같이 저렴한 값을 하는 맛이었다. 매시드 포테이토 믹스는 종이 상자 맛이 났고, 분홍색 팝타르트는 불량 식품 맛, 앤디 워홀을 떠올리며 사온 캠벨 스프 역시 또 사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이었다. 몸에 안 좋을 것 또한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나 김야매님 스스로의 '가난한 외노자라도 미식을 추구하겠다'는 시리즈의 정체성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https://wordkim.tistory.com/category/%EC%8B%9C%EB%A6%AC%EC%A6%88%EB%AC%BC/%EB%AF%B8%EA%B5%AD%EC%97%90%EC%84%9C%20%EB%81%BC%EB%8B%88%20%EB%95%8C%EC%9A%B0%EA%B8%B0



먹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빈곤층의 모습을 떠올리면 으레 고시원과 쪽방이 떠오르듯, 미국에서는 싸구려 모텔과 트레일러 촌이 떠오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넘치는 '디즈니월드 매직 킹덤'을 길 하나 차이로 두고, '매직 캐슬'이라는 이름의 모텔에 사는 아이들 말이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40#google_vignette

https://blog.naver.com/cyh_0919/221237449354


마침 영화를 보기 얼마 전 읽었던, 그리고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노동의 배신'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듯한 작품이었다. 책은 1998년부터 2000년을, 영화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를 그리고 있지만 2024년 오늘의 현실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2014년 영화인 '라스트 홈(99 Homes)'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330584

https://www.imdb.com/title/tt2891174/


가난할수록 돈이 더 드는 역설. 보증금이 없고 신용이 없으면 월세보다 훨씬 비싼 일세 혹은 주세를 내며 모텔에 장기 투숙을 할 수밖에 없다. 1평도 안 되는 우리나라 쪽방 공간에 월세를 25만 원 내면, 30평짜리 아파트에 750만 원 내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평당 주거 비용이다. 요리는커녕 편히 씻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공간. 발버둥 치며 죽을힘을 다해 일해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젊음과 건강까지 잃으면 가정과 삶 모두 파괴된다. 한 인간의 존엄성이 모조리 무너져 내린다.


'노동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자신이 생산성 좋은 노동자인 척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동안 몸을 혹사시킬만한 고된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챙겨 먹으며 돈과 시간을 내어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해왔고, 건강 보험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최저 임금을 받으며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보고, 식사와 집안일과 각종 고된 일을 '대신'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정작 자신들의 아이, 식사, 건강 등은 희생하는 참된 천사라고도 했다.



미국 올랜도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딱 영화와 책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모텔에서 잠을 잤다. 게임 '헤비 레인'에 나왔던 모텔 구조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게임 속 모텔은 주인공이 처참히 망가진 후 학교에 다녀온 아들에게 데워준 냉동식품만큼이나 차가운 공간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유럽 여행 가면 유스호스텔 다인실에서 자고 그럴 때라 숙박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관광지라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혼자 다녔음에도 모텔에 묵으면서 안전 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내 방이 수영장 바로 앞이라 와이파이도 잘 터졌었지.


작년 호주 여행에서는 호텔부터 백패커스까지 다양한 숙소에 머물렀다. 나는 유럽에서 남녀 구분 없는 10인실 호스텔에서도 묵어 봐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동생은 2인실임에도 그 열악함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고, 방에서는 거의 잠만 자야 하는 환경이긴 했다. 여담이지만 전 대통령이 수감되었던 구치소 독방이 3평이라고 한다.


아무튼, 2박이나 3박 정도면 모를까 그런 곳에서 장기적으로 산다니. 심지어 아이들이. 미국은 차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지경이니 차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 살면서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는 없다. 또 다른 충격은 식품 사막화다. 애들이 토마토라는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체를 모른다고 한다. 그저 케찹에 그려진 그림만 볼뿐. 동네에 신선 식품을 파는 가게가 없단다. 더 충격적인 건 길 하나 차이로 주민들의 기대 수명이 20년에서 30년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1508102155345#c2b



결국 돌고 도는 문제다. 돈이 없으니 집에서 쫓겨난다. 제대로 된 환경에 거주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식생활도 엉망이 된다. 물보다 콜라가 싼 천조국이다. 영양은 있을 수가 없다. 몸이 망가진다. 고되어 남들이 기피하는 노동마저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비싼 건강 보험이 있을 리 없다. 가난과 병이 대물림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선 안 된다. 우리가 위 이야기들을 통해 배울 점이 무엇일까?


1. 삶의 질은 생활 인프라가 결정한다.

먼 훗날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고,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삶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당장 일부 어르신들이 사시는 비수도권 지역의 모습만 봐도 미국의 식품 사막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결국 살기 좋은 곳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kp2M-DMVA


2. 절약과 건강을 위해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아직까지 텃밭이나 주말 농장은 개인의 취미, 혹은 귀농 및 귀촌 로망 해소와 같은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톡 까놓고 말해 '돈 없어서 직접 키워 먹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통 은퇴하신 부모님들이 소일거리처럼 하셔서 자식이나 지인들에게 농작물을 나눠 주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위 경향신문 기사에 나온 것처럼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이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나 가야 있다면? 텃밭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생존의 영역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식물 키우기에는 전혀 취미가 없고 중금속 문제도 걱정이 되지만, 좀비 사태가 나든 전쟁이 나든 아니면 생활고에 시달리든 결국 살아남으려면 농사 및 생존 기술이 필수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더불어 살아간다.

경향신문 기사에서 시의 지원으로 방학 중 도서관, 교회 등에서 무료 급식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트링 치즈 한 줄 때문에 주먹다짐을 하고, 또 세상 더없이 맑게 웃기도 하는 아이. 결국 내가 이 글들을 쓰는 이유다. 첫째는 내가 잘 대비하여 불행에도 의연히 대처해 나가기를 바람이고, 둘째는 부자가 되어 나눌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길 원함이다. 그래도, 참 살만한 세상이다. 이제 우리 모두 길 하나 차이에 있는 이에게 관심을 가질 때다.


https://youtu.be/UiQoD53ZGSQ?si=MXIarhwQW1W2Am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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