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행하던 ‘문·이과 감별법’은 문과 여자와 이과 남자가 사는 우리 집에서도 재미난 화제였다. 소파에 앉아 관련 게시물을 읽던 어느 저녁 날이 떠오른다. ‘이과형 답변’으로 제시된 샘플들은 문과인 내겐 하나같이 사고 밖의 대답들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뼛속까지 이과인 신랑을 불러 앉혔다.
“자 봐봐, (종이를 보여주며) 土, 이게 뭐로 보여?” 힐끗 내 쪽을 훔쳐보던 신랑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플러스마이너스 기호.” 뭐라? 이게 ‘흙 토’ 자가 아니라 플러스마이너스라고? 1차 충격을 안고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Li랑 Fe가 만나면 뭐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말을 받았다. “리튬이랑 철?” 놀라움에 굳은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뭐? 아니, Li랑 Fe가 만나면 라이프(Life)지!” 그 순간, 새로운 인류라도 발견한 듯 내 얼굴을 훑던 그가 신음처럼 나직이 내뱉은 한 마디. “라...이프..?” 갑자기 와하하 웃음이 터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닿아 있던 어깨와 발끝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훠어이, 저리 가, 저리.” 장난스럽게 손을 내저으면서.
연애 시절부터 그와 나는 성격도 관심사도 다른 면이 많았다. 오히려 그런 차이점들이 우리에겐 호감이었다. 그는 문학, 예술 등에 관심 많은 나를 신기해했고 나는 전자 장비와 기계에 박학다식한 그가 새로웠다. 재즈와 드라마를 애호하는 나와 달리, 그는 헤비메탈 음악과 다큐멘터리를 즐겼다. 그래서인지 결혼해서도 우리는 같은 티브이 채널을 향유하는 일이 드물었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나 책에 대한 감상을 그에게 전달하면 그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이따금씩 “나도 그거 한번 볼까?” 하면 “좋지!” 하고 서로의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물론 공통적인 취향도 있다. 바로 ‘여행’이다. 그와 나는 바닷가 휴양지보다는 대자연으로 둘러싸인 국립공원을 선호한다. 또, 대도시보다는 역사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낡은 도시에서 오래도록 걷는 것을 즐긴다. 그런 우리가 얼마 전 휴양지인 ‘칸쿤’으로 여행을 가게 된 건 순전히 큰아이의 바람 때문이었다. “스노클링도 하고 바다거북도 보고 싶어요.” 칸쿤이라면 텍사스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워 시간적 부담도 덜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오기 힘들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엄마 아빠 욕심으로, 걷는 여행만 하느라 지쳤을 아이들에게 휴식을 선물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우리는 칸쿤 행을 결정지었다.
12월의 칸쿤은 아름다웠다. 영롱한 청록색 물빛과 짚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달콤한 코코넛 향이 코끝을 스쳤다. “사람 착하게 만드는 온도와 습도잖아. 이런 날씨에 화내면 안 되는 거다, 얘들아!” 내 말에 한바탕 웃으며 폴짝 뛰던 아이들.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던 우리는 큰아이의 바람대로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바다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천연 워터파크. 스노클링 스폿 외에도 대형 슬라이드와 집라인 등 다양한 놀 거리를 갖춘 곳이었다. 스노클링을 마친 후 네 식구 함께 즐길 액티비티를 찾던 우리는 바다로 향하는 강의 유수풀까지 튜브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 부부가 바닷가 휴양지를 선호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둘 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구명조끼도 입었으니 별 문제야 없을 테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어쩐지 긴장감에 몸이 경직됐다.
시작은 수월했다. 튜빙 시작점에는 도넛 두 개가 나란한 모양의 2인용 튜브들이 쌓여 있었다. 신랑은 큰아이와, 나는 작은아이와 짝을 지어 튜브에 올랐다. 얕은 물가에서 시작된 튜빙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엉덩이에 닿는 차가운 물의 감촉도, 느리게 찰랑이는 물결에도 금세 익숙해졌다. 긴장이 사라지고 나니 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찾아왔다. 방수팩에 넣어온 휴대폰으로 잔잔한 하늘과 익살스러운 아이들 표정을 담아내는 사이, 튜브는 어느새 좁고 아늑한 맹그로브나무 숲을 지나 탁 트인 유수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넓은 강 하류에 접어들자 오밀조밀 모여 흐르던 튜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강의 중앙부를 따라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다른 튜브들과 달리 나와 작은아이가 탄 튜브만 가장자리 바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흐름에 맞춰 앞으로 잘 뻗어가던 신랑과 큰아이의 모습은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엉뚱한 방향으로 멀어지던 나는 결국 바위벽 옆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양손으로 아무리 물살을 휘저어도 튜브는 제자리에서만 맴돌 뿐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겁에 질린 작은아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엔 도와줄 가드도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제 페이스대로 튜빙을 즐기기 바빴다. 힘 빠진 팔로 앞에 앉은 아이를 토닥이는데 순간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무도 우리에겐 신경도 안 쓰는데 이 상태가 계속되면 어쩌지? 행여 아이가 튜브 아래로 빠질까 봐 있는 대로 팔에 힘을 주느라 어깨에서부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때였다. “괜찮아? 오른쪽으로 손을 움직여봐.” 신랑이었다. 내 튜브가 따라 올 기미가 안 보이자 강물을 거슬러 우리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는 내 위치를 확인하고는 ‘오른쪽으로, 아니 왼쪽으로, 다시 팔을 뒤로’ 하며 원격 조종하듯 내게 명령어를 입력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나의 취약점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데다 지독한 방향치라는 점이다. 도무지 물길의 갈피를 못 잡는 나를 깨달은 듯, 그는 다시 부지런히 팔을 휘저으며 내 쪽으로 향했다. “그냥 힘 빼고 우리 쪽 튜브 손잡이를 잡아봐.” 팔을 쭉 뻗고 손가락을 최대한 벌려 간신히 그의 튜브를 잡았다. 그렇게 질질 끌려가듯 겨우 가장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인용 튜브 두 개가 줄줄이 기차처럼 물살을 갈랐다. 맨 앞의 신랑이 팔을 열심히 젓는 동안, 외국인들이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 곁을 스쳐갔다. 민망해진 내가 “힘들지? 팔 아프겠다.” 하자 그가 말했다. “괜찮아. 내가 미리 방향 전환하는 것 좀 알려줄 걸 그랬다. 당황했지?” 유속이 약하긴 했지만 강을 거스르느라 그 역시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수영을 못하는 건 그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불안한 마음이 왜 없었을까. 힘들다고 짜증 낼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내색은 조금도 비치지 않는 신랑이었다. 무사히 네 식구가 육지에 닿고 나서야 “아이고” 한 마디 내뱉는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근데 어떻게 다시 거슬러 찾으러 올 생각을 했어?” 그의 답은 간단했다. “왠지 방향을 못 잡아서 헤맬 수 있겠다 싶더라고.”
그는 그런 사람이다. 덜렁거리고 서툰 게 많은 내게 “그런 것도 못해?” 대신 “못 할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 “꽃은 어쩜 이름도 ‘꽃’일까? ‘송이’는 또 어떻고. 장미 한 ‘개’가 아니라 장미 한 ‘송이’라는 게 너무 다행이지 않아?” 내가 홀로 이렇게 떠들면 그게 뭔 소리래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그렇지, 맞아.” 하며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트르르르르-, 지이이이이-’ 매미 소리를 듣던 내가 난데없이 “왜 곤충들 소리는 ‘울다’가 기본형이지? ‘웃다’라고 할 수도 있잖아.” 뚱딴지같은 말을 해도 “음.... 그러게 말이야.” 함께 진지해지는 사람. 차를 타고 가다 꽃나무 사진을 찍으려 황급히 폰을 더듬는 나를 위해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조수석 창문을 내려주는 사람.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존중해 주는 사람.
관심사도 생각의 회로도 다른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다른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존중’, ‘배려’의 가치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실천하고자 하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라 오해하며 살아가는지. 당연하기에 더 많이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 역시 신랑을 통해 매일 새롭게 배운다.
요즘 우리는 사진첩을 뒤적이며 사나흘에 한 번씩 여행에 대한 소회를 나누곤 한다. 그때마다 그는 장난스레 이렇게 말한다. “하아, 진짜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야. 내가 강을 거슬러 가서 구한 거라고.” 그 말이 계속될수록 자아도취적인 그의 표정이 조금씩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여보 아니었으면 나 아직까지 바위에 걸려 있을지도 몰라.” 우쭈쭈 토닥이며 힘껏 장단을 맞춘다. ‘흙 토’와 ‘플러스마이너스’ 사이 거리감만큼이나 서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들은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에게 그런 낯섦은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창(窓)이 되리라는 것을.
이번 계기로 그도 나의 방향조절 능력을 새롭게 파악하게 된 모양이다. 사실 속으로 ‘이 정도일 줄이야’ 생각하며 웃었다고. 잊지 않고 노젓기 설명을 친절히 마친 후 그가 내게 물었다. “어때? 다음번엔 할 수 있겠어?” 든든한 지원군이 옆에 있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우렁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럼! 해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