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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Mar 10. 2024

오늘의 운세는



단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의지할 거라고는 고작 핸드폰뿐인데,
이마저도 배터리가 3% 남짓 남았다.
나머지 네 손가락에 비해
너부데데한 엄지에 의해
허무하게 핸드폰 수명이 깎일세라
신중하고 빠르게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꿈이었다.
실시간으로 길을 안내해 주는 앱이 없으면
엉뚱한 골목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지라,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낯선 공간에서 꺼져가는
핸드폰과 함께 길을 잃는 꿈,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꿈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혹시 길을 잃게 되나?
아니면 방향성을 잃었다는 건가?
별 의미 없는 공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역시 나는 겁이 많은 타입인 게 분명하다.



오랜만에 만난 15년 지기 친구 윤이가
대뜸 사주를 보러 가자 했다.
여태껏 사주를 본 적이 없을뿐더러,
좀 더 가벼운 느낌인 타로 또한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었다.  



종교적 이유와는 무관하게,
결과를 그저 재미로 넘기기에는
나라는 사람이 다소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그 결과를 듣는 순간부터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알게 모르게 운세와 맞물릴 순간만을
기대하고 기다릴 게 눈에 훤했다.



나의 타고난 성격 탓이 크겠지만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타로 에피소드도 한몫한 것 같다.
사춘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타로를 본 친구의 점괘는
전해 듣기만 해도 마음이 쓰라렸다.    



'연애운이 없으니 공부에만 전념할 것',



나는 저런 무시무시한 결과를
예나 지금이나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윤이가 사주를
보러 가자 했을 때 솔깃했다.
한 번 더 졸랐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생긴 카드와 생년월일시만으로
가까운 미래나 혹은 먼 미래까지 봐준다니
놓치기에 아까운 거래이긴 하지만,
역시나 꾹 참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95%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나만의 아주 사소한 재주 몇 가지가 있다.  
한방에 이불 정리하기라든지,
애매하게 걷힌 소매 끝에
물 안 묻히고 세수하기가 대표적이다.



두어 번 나눠서 이불을 정리하고
팔뚝까지 소매를 단단히 올린다 한들
뭐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승패가 어느 정도 결정된,
그러니까 나에게 유리한 게임에서
괜히 운을 시험해 보고 싶어진다.



이불이 촤-락 펼쳐지는 소리와
물기 하나 없이 뽀송한 옷자락,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그날의 행운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왠지 다른 일도 덩달아
잘 풀릴 거 같은 예감이 든다.



꽝이 없는 나만의 점괘를 만들어 본다.
설령 5%의 확률로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 한들 손해 볼 건 없다.
'되면 좋고'라는 식의
일종의 보너스 게임 같은 거니.
만약 되지 않을 경우, 몸을 조금 더 움직여
이불과 소매를 바르게 가다듬기만 하면
성공했을 때만큼의 만족감은 금방 채워진다.



또다시 윤이의 제안에 솔깃해질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운세를 보는 일은 없을 거 같다.
결혼과 재물과 건강과 같은,
궁금한 것투성이인 미래를
엿볼 기회는 영영 오지 않겠다만
내 점괘에 의하면 오늘 하루는
'좋음' 그 이상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내일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
눈을 뜨자마자 이불 정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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