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쌓인 700장가량의 사진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증명해 주긴 하지만, 어쩐지 '다녀왔다'라는 짧은 문장처럼 느껴진다. 언제 또 떠나게 될지 모르는 거니 일상이 지루해질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4일 동안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관하고 싶어진다. 역시 기억과 감정이 선명할 때 쓰는 일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같은 맛이 난다.
출발할 때보다 족히 두 배는 불어난듯한 짐을 풀어헤친 뒤, 여운이 가시기 전에 후다닥 펜을 손에 쥔다.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약간의 사전 준비, 일본에서의 흔적을 최대한 수집한다.
우선 기념으로 사 온 녹차 과자 한 입하고, 뭐라 쓰여있는지 모를 영수증과 발길이 닿는 대로 찍어댔던 사진을 보며 그간의 기억을 순차적으로 더듬어본다.
- 도착하자마자 먹은 주먹밥이 꽤 맛있었어. - 집이랑 자동차가 참 아기자기했지. - 버스 타는 법이 독특하더라.
밤낮 가릴 거 없이 설렜던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모든 게 좋았지만 유독 잔잔하면서도 진하게 남은 잔상이 있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고 나서야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학생, 나의 서툰 일본어를 덮어버렸던 료칸 주방장님의 환한 미소, 매일같이 먹었던 편의점 푸딩.
아무래도 느긋한 그들의 문화와 낯선 땅에서 받은 친절함,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생소했던 달콤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거 같다. 밤사이에 꾼 기분 좋은 꿈을 까먹을세라 떠오르는 대로 메모장에 적어내듯, 그때의 생생함을 꾹꾹 눌러쓴다.
간질간질- 강아지풀이 마음 어딘가를 간지럽히는 느낌이다. 익숙함을 벗어났던 시간이 한입 베어먹은 녹차 과자처럼 녹진한 맛이었음을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