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맡 선반 가장 깊숙한 곳, 먼지가 폭설처럼 내려앉은 오르골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나사가 빠져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그런 것치고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대표하는 '언제나 몇 번이라도'의 멜로디가 선명하다.
2년 전 이맘때쯤 본가에서 들고 왔는데 그때도 지금과 별다를 것 없는 신세였다. 굳이 굳이 먼지를 닦아 자취방으로 가져왔건만, 이후로 두 번 정도 들었나? 족히 10번은 돌려봤을 만큼 센과 치히로를 좋아하긴 하지만, 단순한 팬심으로 이 먼지 구덩이를
들쑤신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골이 아닌 추억을 들쑤신 거였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아나바다 운동이 한창이던 10월, 짤막한 다리로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어 파란 양동이 너머 펼쳐진 운동장을 빼꼼 보고 있던 녀석을 처음 만났다. 도넛처럼 둥글게 말린 긴 꼬리와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검정 귀, 그리고 별사탕이 반짝이는듯한 눈빛까지 13살짜리의 눈에는 한없이 예뻐 보였다. 부모님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이 작은 생명체를 무작정 집으로 데려가는 것만이 그때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해피야. 네가 항상 행복하면 좋겠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해피, 그 당시에 옆집 강아지도 해피였을 만큼 흔하디흔한 이름이었지만 내 나름의 의미를 담아 고심 끝에 정한 거다.
온통 낯선 것으로 둘러싸인 하루가 고됐는지, 그나마 익숙해진 내 무릎을 침대 삼아 콩자반 같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던 시절, 나를 의지하는 첫 존재였다. 예나 지금이나 갓난아기를 안아본 적은 없지만,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겠거니 싶었다. 처음이라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과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그 어디쯤.
엄마들이 아기를 어떻게 재우더라. 자장가를 불러주지! 자장가로 제격인 오르골이 눈에 띄었다. 뜨드득- 뜨드득- 감긴 태엽이 서서히 풀리면서 센과 치히로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숨죽이고 쳐다만 보는 게 해피의 숙면을 돕는 거였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선택 사항에 없었다.
한동안 오르골 자장가는 계속됐다. 무릎과 무릎까지의 너비에 쏙 들어오던 털 뭉치가 경계 밖으로 삐죽 삐져나오기까지. 이후로는 오르골을 듣는 것보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어른들이 왕년 이야기를 하듯 해피와 오르골에 얽힌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면서 그땐 그랬다며 몽글한 감정을 즐기곤 했다. 나와 해피만의 무언가가 있는 느낌, 별거 아닌 물건에 의미가 생긴 순간이다. 태엽을 감지 않아도, 그저 오르골을 보는 것만으로 곤히 잠든 해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2022년, 15살이 된 해피는 오르골 맡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그때의 모습처럼 아주 깊게 잠들었다. 해피를 기억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걸로. 한참 동안 서랍장에 묵혀뒀던 오르골이 떠올랐다.
해피가 떠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예전만큼 해피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 해피를 안았을 때의 부피감이라든가, 털에 얼굴을 파묻으며 느꼈던 온도라든지. 오르골에 쌓인 먼지만큼이나 점차 뿌예진다.
어쩌면 나중에는 먼지가 쌓이다 못해 작동을 안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르골이 없다면 해피를 무엇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사진이나 영상으로?
만에 하나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사진이 다 날아가 버린다면?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 내가 해피를 무진장 사랑했던 마음, 이것만큼은 먼지가 쌓일 일도 없어질 일도 없으니까.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려줬던 해피가 이번엔 이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까지도.
수명이 있는 것들에게 애정을 준다. 새로 산 옷이 목이 늘어날 때까지 입고, 마른 화분에 물을 가득 주고.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하루를 궁금해한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보고 싶거나 그리워질 때 언제든 떠올릴 수 있도록. 눈앞에 있는 존재를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