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개인 사정으로
글 업로드를 쉬겠습니다. 꾸벅-'
하마터면 개인 사정이라는
만능 치트키를 사용할 뻔했다.
병가, 생일, 가족 모임 등
자질구레한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단어 하나로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앞서 언급한 개인 사정의 껍질을 벗겨보면
노트북이 망가졌다는 구차한 변명이 숨어있다.
살아가는 날이 하루하루 누적될수록
의도치 않게 시스템이 구축된다.
이름하여 일상 루틴,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의 하루는 단조롭다.
퇴근 후 밥을 먹고 글을 쓰다가,
어느 정도 소화가 됐다 싶으면 운동을 한다.
이후에는 책을 읽는다든지
영화 한 편을 보면 그날 하루는 완벽하다.
반대로 이 흐름을 타지 못한 날은
어딘가 찝찝한 하루다.
아주 까탈스럽고, 또 융통성도 없는 규칙이다.
운동을 하고 밥을 먹는다든지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건,
노래를 부르다가 삑사리가 난다든가
사방에 팔을 뻗고 있는 퍼즐 조각을
모서리에 억지로 끼워 넣는듯한 느낌이다.
만에 하나 순탄하게 흘러갈지라도
미세하게 환경이 바뀌기라도 하는 날에는
파업을 선언해 버리기도 한다.
최근에 샤프심이 거덜 났다.
그러니까, 노트북이 망가졌다.
평소에 노트북으로 글을 쓰니까
샤프심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샤프심이 없으면 비상용 연필을 쓰면 될 것을,
연필을 잡기보다 이윽고
필통을 닫아버리는 쪽을 택한다.
사실 비상용 연필은 종류별로 많다.
핸드폰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정 안되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집필하면 되니까.
왠지 키보드가 아닌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면
평소만큼 글이 안 써질 것만 같은 이 기분,
지금껏 길러왔던 건
습관이 아니라 미신이었나 보다.
비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그날 하루가 부정 타버린다.
매번 가던 길에 샛길을 냈다.
너무 이질적이지 않을 정도의 새로운 루틴이다.
저녁 먹기 전에 운동을 하고,
속 시원하게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핸드폰으로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하루에 속했으려나.
샛길도 하나의 길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주 드나들며 발자국을 남기다 보면
이 또한 보통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익숙한 길은 없으니까.
어쩌면 낯선 이 길이
의외의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글을 마쳐야겠다.
모쪼록 마침표를 찍는 거 보면
노트북이 망가졌다는 건 역시 핑계였다.
개인 사정 찬스는 고이고이 아껴 둘 거다.
이도 저도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때,
그때 당당하게 비장의 카드로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