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틀에 나를 가두지 마세요
"그래서 그 과를 나오면 뭐 먹고 살게 되는데?"
그런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죠. 먹고사는 건 현실이니까요.
예전에는 나름 열심히 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흥미도 있었고, 거창하게 생각되는 꿈도 있었고요. 지금껏 해 온 노력에 상응하는, 그럴듯한 미래를 그려야 될 것 같았달까요. 특히 대학이 아닌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질문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뭔가 '내가 나온 과'를 살려야 할 것 같다는 압박 때문이죠.
지금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선택한 분야에 흥미도 있고, 그것과 관련한 꿈도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장에 적힐 과와 상응하는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달라졌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과라는 작은 틀을 그어놓고서 그 안에 들어갈 내 인생을 그려보는 것이 맞는 일일까요. 큰 그림은 나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걸 이루는 작은 점과 선들 중에 내가 선택한 과가 있는 것 뿐이죠.
답답한 마음에 오늘은 제가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적어봅니다.
1. 단 한 달만이라도 서핑샵에서 직접 일해보기. 청소, 강사,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등 어떤 일이든 상관없음.
2. 빙하가 다 녹기 전에 그린란드에 가보기. 가서 빙하와 오로라를 보기.
3. 6개월~1년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가기. 목적은 서핑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적는 것.
4. 에누마 이수인 대표님을 만나 인터뷰하기. 사회정서학습과 관련해서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제안해보기.
5. 졸업 논문을 무사히 마치기.
6. 아프리카에서 교육 관련 활동 해보기. 봉사, 연구 등 종류는 상관없으나 현지 학교에서 직접 활동해야 함.
7. 포르투갈의 나자레 앞에서 빅웨이브 서핑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적어놓고 보니 참 철이 없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저희 부모님이 이걸 보게 된다면, 첫 번째 항목에서부터 뒷목을 잡고 쓰러지실 것입니다. 주변 친구들도 하고 싶은 게 있겠지만 꾹 참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제 생각은 여전히 자유롭습니다. 이 정도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 아냐? 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상상을 현실로 옮길 궁리를 합니다. 스스로도 가끔 좀 현실감이 없나 싶어요.
그런데 어쩌면 제 인생은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듣던 말 중의 하나가 '안 될 거야' 였는데요.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에 합격하기는 힘들다, 거긴 쟁쟁한 아이들이 많아서 어렵다, 너의 점수로는 더 상위권 대학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고, 남들이 안 된다 하던 것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아깝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네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어?
거기서 일하기엔 네 능력과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아?
그걸 하면 장기적으로 전망은 좀 좋은거니?
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저를 위해주는 것이겠지만, 저보다 저의 주변인들이 제 인생을 더 아까워합니다. 하고 싶은 일에 내 인생의 유한한 시간을 일부 바치는 것. 저는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참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아 왔습니다. 결국엔 현실이 그렇다는 사람들과, 현실은 그렇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그렸던 삶을 손에 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정답은 없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가 아니라 그냥 현실감 없이 실행에 옮긴 사람들만이 상상했던 인생 속을 살아갈 기회도 얻습니다. 물론 상상과 현실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여지껏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제가 너무 나이브하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저 어떤 스토리로 인생을 채워갈 것인가, 하는 결단 중입니다. 더불어 쓸데없는 고민이 깊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