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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강행군

by 여행가 박진호


2023 6/25 출발 날 아침이 밝았다. 저녁 비행기를 타는 나는 오후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당분간 얼굴을 보지 못 할 교회 분들에게 인사를 한 후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가려니 방학에 쉬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귀찮음이 묻어 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들어선 공항, 뉴욕에서 귀국한지 8개월만에 다시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여태 본 적 없는 수 많은 인파에 압도 당할 뻔 했지만, 저마다 여행의 설렘을 안고 밝은 표정으로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 덕에 나도 괜스레 설레기 시작했다. 수하물을 부치고 부모님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나눈 후 출국 심사대로 향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밝은 표정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사실 걱정 반 설렘 반이다. 가서 잘해야 하는데.. 아니야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이야 가서 절실함을 가지고 독기를 품고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레 잘하게 될 거야, 속으로 되새기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내가 일찍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는지 탑승 게이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한동안 못 볼 야구를 보고 있었는데 오리엔테이션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슬 누나와 태은이가 나를 보곤 인사를 건넸다. 둘 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들었기에 내적 친밀감이 쌓인 상태였는데, 공항에서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공항에서부터 같이 온 걸 보면 둘이 벌써 친해졌구나 생각했던 찰나, 옆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서로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슬 누나와 태은이가 어떻게 벌써 친해질 수 있었는지 아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슬 누나의 사교성이 정말 좋았고 대화를 이끌며 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슬 누나, 태은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분에 탑승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4시간 30분을 비행기 타고 필리핀 현지시각으로 자정이 넘겨 도착한 후 버스로 3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다. 현지 시간으로 4시에 도착 예정이라고 하니.. 험난한 고행길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꺼내서 자리에 앉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박웅현 작가님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가다 보니 4시간 30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다.


Good evening Iloilo!

전에 다녀왔던 비행이 뉴욕 16시간 비행이었던지라, 필리핀으로 향했던 5시간의 비행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필리핀 땅에 첫 발을 디뎠다. 내리자마자 동남아 특유의 더운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관리자 분의 안내를 받아 버스에 탑승했다. 밤 12시.. 진작에 침대에 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에 버스에 타서 학교로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방지턱이 나올 때마다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버스에서는 잠을 자려야 잘 수가 없었다. 자다가 깨다가 반복하다가 잠을 포기하고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새벽 3시 30분을 조금 넘겨서 숙소에 도착했다. 내 몸을 가눌 힘 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숙소 로비로 향했다.


처음으로 37명의 학생들을 마주한 순간이지만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은 사치였다. 남자는 4명이었기에 4인 1실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한 분은 혼자 숙소를 쓰다가 2주 뒤 합류하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숙소를 쓰고 나머지 세 명이서 한 숙소를 쓴다고 했고 나는 3인실을 배정받았다. 같은 숙소를 쓰게 된 친구들과 인사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한 명은 나랑 동갑인 주성이이고 한 명은 나이가 세 살 어린 태관이었다. 셋이서 인사를 나눈 후 숙소에 올라가 문을 열었는데 일동 충격을 받았다. 너무 좁은 곳에 모든 것을 몰아넣은 느낌이었고 집에 환풍기와 방충망이 없었다. 침대는 내가 군대에서 쓰던 침대보다 딱딱했고 다행인 사실 하나는 에어컨은 방마다 있었다. 방은 두 개였고 1인실과 2인실로 나뉘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내가 운 좋게 1인실을 쓸 수 있었다.

아담하면서도 있을 것들은 있던 나의 방!


간단하게 짐을 풀고 샤워를 하려는데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와... 이거 정말 쉽지 않다... 어지쩌지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 시간은 새벽 4시 30분...


대장정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 무렵 내일부터 있을 또다른 대장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설레는 마음을 가지며 이만 스르륵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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