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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May 23. 2023

3가지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걸린 시간

시정과 성장



익숙한 샹송과 낯선 샹송을 들으며 꿈꾸는 삶의 모양을 상상한다. 그냥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본다. 계절, 온도와 습도, 바람의 방향과 세기, 후각으로 느끼는 냄새와 두 귀를 감쌀 백색 소음까지 모두 그려본다. 그곳에 샹송이 흐르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크라상 그리고 그 둘의 섞 인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날이 좋은 봄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풀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백색소음이 내 귓가를 감싼다. 아, 파리! À Paris! (*'파리에서'라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는 분명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즐거웠다. 프랑스어 학습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세 가지 정도 였던 것 같다. 첫째, 커리어 측면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프랑스 회사였기 때문에 프랑스 본사와 연락할 일이 잦았고, 프랑스인 팀장님을 잠깐 모시기도 했고 팀장급 보다 더 높은 직속 상관들이 전부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언젠가 프랑스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가고 싶었다. 둘째, 당시나 지금이나 멈출 수 없는 지적 탐구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상가, 철학자 중에는 프랑스인이 많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위대한 사람들이 텍스트로 남긴 지혜의 정수를 번역된 글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 탐구해보고 싶었다. 물론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 여러 다른 국가 출신의 사상가도 많았지만 영어 외에 한 가지 언어만 공부할 수 있다면 첫번째 이유인 커리어에도 힘을 줄 수 있는 프랑스어를 선택해서 효율을 높이는 것이 현명해보였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냥 뭔가 하고 싶었다. 퇴근 후 시간이나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순 있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뭔가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고 싶은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고 일단 뭐라도 해야 했기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배우는 건 언제나 의미 있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프랑스어를 시작하긴 했지만 첫 달에 크게 충격을 받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같은 알파벳 계열 언어니까 영어와 대충 비슷하게 공부하면 되겠거니, 하고 손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프랑스인 선생님에게 피드백 받았던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다음의 말이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는 돼. 하지만 그건 영어식 프랑스어이지 프랑스인은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 않아."



그 말은 다음의 이유 때문에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동안 계속해서 영어랑 비교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성별이 없는데 왜 프랑스어 단어에는 성별이 있지?' '영어에서 관사는 하나인데 왜 프랑스어는 여러개지?' '영어에서 어순은 이러한데 왜 프랑스어는 이렇게 표현하지?'  '영어에는 없는 시제가 왜 이렇게 많지?' 와 같은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다. 프랑스어와 영국(혹은 미국)은 분명히 다른 국가인데 나는 그 둘이 온전히 나의 관점에서 '외국어'라는 생각에  같은 범주에 넣어놓고 획일화하여 이해하려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습의 속도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잰걸음을 하던 프랑스어 실력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실력이 조금씩 성장하자 나는 다소 도전적인 시험을 목표로 잡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넉넉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직장인인 내가 제2외국어를 학습해서 자격증까지 취득한 일은 나에게 관점의 전환과 목적만 있다면 그것을 충분히 쟁취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때 한번 깨어진 관점은 이후에 독일어 공부를 할 때에도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겪었던 초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어를 프랑스어와 비교하지 말자' '독일어를 영어와 비교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실제로 독일어는 프랑스어보다 성별도 하나 더 많고(중성이 추가), 관사는 4x4 매트릭스 테이블로 외워야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좌절하기 보단 '독일어는 이렇구나!'하고 경탄하고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독일어 초반 학습속도가 빨라, 프랑스어에서 2년이 걸렸던 과정을 독일어에서는 단 5개월 만에 끝냈다. 어학원 선생님들이 작문 시간에는 내 자리로 와서 "예전에 독일어 공부 경험이 있으세요?" 하고 물었고, 알파벳부터 처음 배우는 거라고 말하자 "언어 쪽으로 뛰어나신 분인가 보네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참, 나는 수학과 과학을 사랑해서 이과를 선택한 공대 출신이다. 혹시 내가 정말로 언어 쪽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어  노파심에 말을 해 보자면, 전혀 아니다. 심지어 수능에서 영어 성적이 가장 낮았고, 대학교 1학년 때는 영어 보충반을 수강했을 정도다. 나는 언어적으로 전혀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어떤 도전을 시작할 때의 동기와 그 도전을 이어갈 때의 동기, 그러니까 두 가지 Why는 다를 수 있다. 처음엔 앞서 말한 3가지 이유, 커리어, 지적 호기심 그리고 시간 떼우기가 동기였다면 나중엔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동기가 되었다. 둘째, 시기 적절하고 수준에 맞는 피드백은  학습자로 하여금 실수를 재빠르게 시정해서 성장에 가속을 올릴 수 있다. 프랑스어 선생님의 피드백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내 머리가 좋지 않아 성장이 더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 나는 내 IQ수준이나 학습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과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수정했다. 그 결과, 병목에 막혀 있던 학습 성장이 뚫리며 실력도 가속도를 달렸다.




이뿐 아니다. 이렇게 학습한 시정 경험과 성공 경험은 이후에 다른 분야의 새로운 학습을 할 때의 기본 값을 높여준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처음 사다리 오르기를 도전할 땐  맨 아래에서 출발했다면, 두 번째 사다리 오르기를 도전할 땐 세번째 쯤 다리에서 출발하는 것 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출발 지점은 도전 경험이 쌓일수록 높아진다. 영어 공부가 10년 가까이 걸렸고, 프랑스어 공부는 2~3년, 독일어 공부는 수개월이 걸렸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우리가 도전을 반복할수록 실패 혹은 실수하는 일은 많을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적절한 피드백과 수정을 통한 경험치가 쌓인다. 하지만 실패의 결과가 실패는 아니다. 그것은 경험이고 노련미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실력이라 부른다.


오늘도 나는 도전하고 어쩌면 실패를 할 것이다. 그리고 실력이라는 돌탑에 돌 한장을 쌓는 일을 한다. Br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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