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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Aug 02. 2023

다정함 한스푼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마음의 죽음과 소생이다.



곰곰히 돌이켜보니 나는 첫 직장, 첫 부서 이후 계속 정착하지 못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첫 부서에서 5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갑작스럽게 마케팅으로 직무를 옮기며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출근지도 바뀌었다. 당시 본사로 발령을 제의 받았을 때 약간 망설이긴 했지만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유는 지금 안정에 대한 관성을 거부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관성이 더욱 커져 변화를 실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부터 나는 한 곳에 2년 이상 머물지 못하고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 1년을 조금 넘기고 퇴사했고, 백수생활을 거쳐 공기업에 입사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대략 1년 반을 보내고 퇴사해서 온 곳이 현직장이다. 이곳에서는 얼마나 있을까? 오래 머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여기고, 미래 직장과 고용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전형적인 J 이자 불확실함에 초연하지 못한 나는 그때부터 쭉 불안감을 키워온 건 아닐까?  





이러한 직장의 이동과 함께 여러 주변 환경들이 더해져 나의 불안정감은 최근 더욱 증폭되었다. 자주 가슴에 떠오른 단어는 '마음 지옥'이다. 그때마다 나는 떠오른 단어, 한문장 짜리 마음들을 포스트잇이나 메모지, 핸드폰에 적어서 내려놓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처음엔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갈수록 힘들어져 나중엔 기도를 할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는 무너져갔다. 처음엔 뜨거웠던 주일 예배도 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결국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주일도 생겼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회복하지 못하는 주말을 보내고 새롭게 시작한 월요일 아침, 루틴처럼 방문하는 카페에서 푸로틴 쉐이크를 쏟아버리며 사고를 쳤고 입고 있던 정장을 다 버림과 쪽팔림은 물론 카페 직원까지 고생시켰다. 울고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보다는 자꾸 폐만 끼치는 사람같았다. 그때부터 이주일 동안 그 카페를 거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S언니는 나를 위로해주며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지금 다루시려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몰랐다.





이직을 잘한 것 같고 갑자기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교만함은 그다지 오래 지속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미사일이 되어 나를 무너뜨렸다. 이것을 깨닫는 연속의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3개월 동안 자주 실수하고, 사고를 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여느 때와 같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부서의 직원이 지나가며 안부를 건넸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참았던 설움이 올라와 눈물이 터졌다. 물어봐주어 고맙다, 말하고 다시 수시간동안 야근을 하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타부서 동료가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이번엔 울진 않았지만 힘든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다. 입사 3개월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게 된 것이다. 만약 나에게 힘든 일이 없었다면 나는 교만함과 준비되지 못한 마음으로 동료를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2주 만에 루틴 같이 방문하던 카페에 갔다. 민망함반, 나를 기억하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 반, 미안함 반... 별 일 아닌 것 같으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방문이었다. 눈을 30도 각도로 내리깔고 다소 당당하지 못한 모습으로 주문을 했다. 메뉴는 늘 똑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랑 사이즈 주세요."





그리고 그 뒤에는 페이*할인이요, 적립은 연동되어 있어요, 하고 두 문장을 늘 붙인다. 직원은 나를 기억하지 않았던 건지 모르는 척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이 두 마디를 할때까지 먼저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주문은 달랐다. 직원은 내 주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가 주문할 메뉴를 입력하고, 결제 방식과 적립까지 모두 입력을 끝냈다. 나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욱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내가 실수를 하고 폐를 끼칠수록 미움만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순간적으로는 화가 나고 짜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들은 나에게 미움이 아니라 상냥함을 한스푼씩 부어주었다. 모든 사람의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라고 했던 최근 읽은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내 의도가 선한 것이었듯, 그들의 의도에도 선함이 있다. 설령 끝내 미움을 받더라도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미움받을까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아'  '나만 생각해' 라는 말도 많이들 하지만 나는 그걸 이기심의 영역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다른 사람 생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찮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도 '사람'이기에 순간적인 감정이나 행동이 꼭 본래 의도는 아니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안에는 사랑이 임재한다.





그리고 나의 안에도, 거룩한 그 사랑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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