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봐. 제니퍼가 말했다. 나는 요즘 무리했던 일과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은 일,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까지 차례대로 설명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것들로는 불충분했다. 간호사인 친구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정황상 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극도의 불안을 느끼며 질병에 집착하는 모습이 정상범위를 벗어난다는 이야기와 간호사 친구가 심리상담을 권했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사실의 나열들에 이 한가지 이야기를 더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무슨 일’이라는 것은 나의 건강이나 질병이 아니라 나의 ‘심리’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나는 애썼다. 내가 스스로 이해하는 범주 내에서 최대한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K-장녀’에 대하여 설명했고,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대하여 설명했으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가정환경과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오로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들을 설명했다. 내 말을 얌전히 들으며 “Okay” “I see” “True” 와 같은 추임새를 적절히 곁들이던 제니퍼가 덧붙였다.
“Maybe it could be also your personality. Because you don't want to bother others.” 어쩌면 네 성격과도 연관이 있겠지.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으니까.
그 말이 나에게로 들어온 순간 눈가 근처에 있던 뜨뜨미지근한 눈물샘이 딸깍 하고 켜진 것 같았다. 왼손에는 얼굴에 가져다 댄 스마트폰을 계속해서 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바쁘게 눈물을 닦을 티슈를 찾았다.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 때 불편하거나 희생하지 않길 바라며 행복하고 평안하길 바란다. 내가 병에 걸린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일이다. 나의 깨달음을 설명하자 제니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애시절 힘든 일이 있을 때 남자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제니퍼의 요청을 기쁘게 여겼다는 것이다.
“When you ask for help to your people, they will be very happy that you ask for their help.”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면, 네가 도움을 요청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이 기뻐할거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도록 한다. 나는 이 간단한 진리를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하려 할 때나 기분 좋은 일을 하려 할 때만 허용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나를 위해 반찬을 해준다거나 하는 것들. 나는 내가 약하고 무너질 때 조차도 이 법칙이 적용되는지 깨닫지 못했다.
통화 시간이 끝나갔다. 제니퍼가 자신만의 마법 단어를 알려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위하는 행위를 ‘이기적인 Selfish’ 이라는 단어로 구분한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단어를 쓴다고 했다. ‘Selful’. 사전에 없는 단어지만, 제니퍼의 정의를 빌려보자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최대로 생각하여 ‘나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Selful 나로 가득 채우기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행복도 결국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내 안에 행복과 평안이 없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 있을리가 없다. 나로 먼저 가득채워야 할 이유다.
남자친구에게 전달하던 불안을 멈추고 행복과 평안을 전달하기로 했다. “오빠 고마워요.” 뜬금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체 없이 답장이 왔다. “어떤게? 내가 더 고마워요.”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와줘서, 나를 알아봐줘서, 나를 아껴줘서 감사한 것들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