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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Sep 27. 2024

#16 프로포즈 백

24. 4. 18


프로포즈백에 관하여 나는 말하고 싶기도 하고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감동과 고마움을 기록하고 싶어서,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프로포즈백은 지극히 한국 문화다. 남성이 결혼할 여성에게 가방을 선물하는 문화인데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역사와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준비를 하며 보니 남성이 여성에게 가방을 선물하는 문화가 보편적으로 퍼져있었다. 처음엔 ‘굳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보편성에 편승하여 남자친구가 나에게 가방 사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에게 명품백의 역사라 하면, 사실 없다. ‘명품’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 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볼드한 명품로고가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는 명품이 싫었다. 한번은 동유럽으로 여행을 가며 아울렛에 들러 스스로 명품백을 선물하겠다고 잔뜩 다짐했던 적이 있다. 여행자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 시간을 무려 하루나 들여 근교 아울렛 방문 일정을 잡았다. 아울렛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을 때부터 나는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한국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아울렛에도 역시 한국인들이 많았고, 심지어 구찌니 프라다니 하는 잘 알려진 브랜드의 매장에는 거짓말을 약간 보태서 100퍼센트의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많았다. 그때가 벌써 6년 전이니 가격이 많이 오르기 전이었고, 아울렛 할인까지 들어갔으니 이름 있는 명품백을 200~300만원이면 구할 수도 있었다. 그 매장 안에서 누구나 알 법한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가방을 들고 결제를 하려던 순간 ‘내가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가방을 홀린 듯 결제하려던 나는 매장을 나와 다른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방이야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이긴 하지만 ‘보부상’인 나는 예쁜 가방에 짐을 조금씩 넣어 다닐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가방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동유럽 여행을 하며 유럽과 사랑에 깊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여행 가방을 하나 더 장만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용 가방을 파는 전문 매장에 들어갔다. 크고,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미래에 여행할 나날을 생각하며 가방을 골랐다. 그렇게 나는 명품 가방 살 돈으로 이민가방만큼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구매했다. 남자친구와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여행용 캐리어가 내가 가진 가방 중에 제일 비싼거야. 명품백이랑 맞바꾼 거거든.” 실로 사실이었다. 그랬던 내가 프로포즈백이라는 문화에 은근슬쩍 편승하여 명품가방을 구매한다니, 그런 사실들이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끝내 내가 이 프로포즈백에 관하여 말하는 이유는, 프로포즈백을 선물 받고 나서 내 안에 떠오른 한 문장 때문이다. “오빠는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사람”이라는 문장. 단지 그가 나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이전의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나에게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보다 저렴한 가격의 ‘비슷한’ 물건으로 구매해왔다. 약간의 차이. 그 사소한 차이에 모든 나의 욕망을 타협하며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포즈백을 고르는 지난 몇 개월 동안은, 뭐랄까 나의 취향과 욕망에 거의 완전하게 집중하는 과정이었다. 남자친구가 처음 가방을 보라고 했을 땐, 도무지 내 취향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의 등쌀에 못 이겨 한번, 두번 백화점에 방문해서 가방을 보기 시작했지만 그게 못내 어색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견물생심의 존재! 처음엔 어색하고 관심 없던 나도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확고한 나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가방을 보면 볼수록 가격대는 높아져만 갔다. 온갖 브랜드의 수십 가지 가방을 들어보고 만져보던 중 운명처럼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만났다. 그리고 그 가방은… 여태 살펴 본 모든 브랜드와 디자인의 가방을 통틀어 가장 고가였다. 가방 자체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악세사리를 매치했을 때 실용도와 디자인이 훨씬 나의 스타일과 잘 어울렸다. 악세사리만 해도 수백만원이었다. 나는 이 가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프로포즈 백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가격대와 악세사리를 같이 구매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마침내 운명의 가방을 만났노라 선뜻 말하지 못했다.



틈만 나면 가방 보러가자, 맘에 드는 거 있냐 하고 물어보는 남자친구에게 어느 날은 “사실…”이라고 운을 띄우며 나의 가방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저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해 과도한 부연 설명을 붙였는데, 프로포즈백을 사야 한다면 그 가방이어야겠지만 이렇게 고가의 가방을 사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지금이야 좋지만 막상 결혼하면 괜히 비싼 돈 들여서 후회할 거라는 둥 이런 저런 말을 붙였다. 가만히 듣던 남자친구는이렇게 말했다.


“그럼 프로포즈백 말고, 프로포즈 카 어때?”



말문이 막혔다. 고가의 가방이 부담스러워서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라니. 그 순간 깨달았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구나. 던져진 말이 우리 사이에서 공명하다 마침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반짝 하고 이해가 되었을 때, 나는 그만 실소해 버렸다. 가방이 비싸다고 이야기하는데 대신 자동차를 구매하자니. 덕분에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합리화라는 거대한 욕구의 표상이었겠지만, 가방이라면 자동차보단 훨씬 저렴하니까.



목표 주식을 최상의 타이밍에 매수하려는 투자자처럼 우리는, 아니 나는 상품을 정해 놓고 최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매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첫 구매였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나에게 선물한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모든 구매물품들에는 조금씩 타협이 들어가 있었다. 6년 전 처음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큰맘 먹고 마련한 6인용 대리석 식탁은 고가이긴 했지만 리퍼제품으로 50퍼센트 할인을 받아 구매했고, 스마트폰은 최신모델의 바로 직전 모델을 구매했고, 자동차는 물려 받았고, 마음에 드는 옷은 그 자리에서 결제하지 못하고 비슷한 디자인의 저렴한 브랜드에서 대체 구매해왔다. 그러나 이번 가방 구매 과정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단순한 구매 혹은 프로포즈백의 의미를 넘어 나의 욕망에만 완전하고 완벽하게 집중하는 첫 경험이었다.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려는 사람. 이러한 존재가 내 삶 속에 그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어쩌면 이게 금융치료 인걸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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