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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03. 2023

꽃잎에서 녹음으로

  벚꽃이 떨어진다. 만개한 꽃잎과 흩어지는 꽃잎이 한데 섞여 만들어낸 풍경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그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아무도 추하다거나 시시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올해도 어김없었다며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그 흔적을 간직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저장한다. 벚꽃 또한 그런 자신의 평가를 알고 있다는 듯 움켜쥔 것들을 바람의 세기에 비례하게 놓아준다.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자연스럽게 녹음에게 넘겨준다.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녹음은 벚꽃의 빈자리를 메우며, 다시 단풍을 위해 그리고 나뭇가지에 앉은 눈송이를 위해 그 자리를 비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떠난 자리를 그리워하고, 다가올 자리를 기대하며, 함께한 자리를 기념한다.


  벚꽃처럼 떨어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떨어지면 추락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25살 대학생은 20살 대학생을 떠올리기 싫어했다. 20살 대학생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문동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선배도, 동기도, 남자도 내가 있는 자리로 오고, 내가 가는 자리에 있었다. 걸음마다 인사할 사람이 있으며, 낮에도 밤에도 이문동은 새롭지만 익숙하고 다정한 구석들로 가득했다. 25살 대학생은 어느새 이방인이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우르르 내려 같은 건물과 교실로 향했지만 잘못 섞여 들어온 사람처럼 이질감을 느꼈으며,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학교 밖으로 벗어났다. 대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고개를 돌려도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헛헛함을 느꼈으며, 중심이 ‘나’에서 ‘쟤’로 ‘우리’에서 ‘그들’로 옮겨 갔음을 절실히 깨닫고 도망치듯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었다. 그렇게 25살 대학생은 자신의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25살 대학생은 사회초년생이 된다. 사회초년생은 다시 파주에서 중심이 되었다. 중심 속에 있는 초년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옆 팀 과장님과 같은 팀 차장님은 저마다 한 마디씩 초년생의 젊음을 부러워했다. 20대는 아직 운동 안 해도 돼, 20대 때 그런 옷 입어야 해, 20대는 아직 …, 20대는 …. 그 말들 속에서 꽃이 떨어진 초년생은 자신의 꽃잎을 한번 줍고자 하였다. 20대 명성에 정점인 20살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으며, 20살처럼 내딛으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파주 초년생은 꽃잎을 꿈 꾸며 오랜만에 신촌거리를 내딛는다. 신촌거리에서 실제 20살들을 본다. 삼삼오오 걸어가는 20살, 지하철에서 조는 20살, 취기가 잔뜩 오른 20살. 초년생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쟤’와 ‘그들’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초년생은 20살 대학생을 떠올리기 위해 클라우드를 열었다. 클라우드 속 20살은 누구보다 밝았고, 어리숙했고, 어른이고 싶어 했다. 유튜브를 보고 배워 안 어울리는 화장과 옷을 입은 20살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막막했고, 남들과 달리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제 명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이 떨어진 초년생은 가지에 새순을 돋아나고 있음을 보았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았고, 그것을 위해 엉성하지만 세밀한 장기계획도 세워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20대 후반 초년생은 20살 대학생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애초에 그때와 지금은 다른 사람이기에 꽃잎에게 떨어지지 말라며 발버둥 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새로운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순을 녹음으로 다가올 자리를 같이 기대해야겠다. 그 녹음은 언젠가 물들어 알록달록 해질 것이며, 그 단풍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리라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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