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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찮은 평화

by 글섬

창문을 두드리는 명징한 빗소리와 나즈막히 견고한 부조니 편곡의 바흐 샤콘느 피아노 선율, 그리고 생떽쥐베리 인간의 대지.

집 나갔던 평화가 돌아왔다.


두 번의 연달은 이직으로 피폐된 내면이 한사코 거부했던 평화다. 내가 원하고 그리워했던 게 이 작은 평화였음을, 겨우 이 소소한 시간이었음을 절감하자 사는 게 참 치사하다. 이토록 조그마한 평화를 위해 그토록 수차례 닳고 무너지도록 설계된 존재가 서럽다. 하지만 이 하찮음에 뜻이 있음을 믿는다. 치사하고 서러운 만큼 더욱더 소중하고 귀해지는 깊은 뜻이.


시끄러운 주변으로 인해 덩달아 까끌거렸을 속을 달래려 마시는 꿀차가 달디달아 뭔지 모르게 그립다. 바이올린 원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부조니의 샤콘느는 아는데 모르는 곡이다. 플레티노프의 연주는 그걸 또 극대화한다. 바이올린 샤콘느가 폐부를 곧장 뚫는 듯하다면, 피아노 샤콘느는 심장 주변을 끝없이 공전하며 단속한다. 같은 음인데 다른 선율이다. 월화수목금을 버티는 동안 나 역시 그렇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나 같은 나 밖의 나다. 때마다 다른 나를 조율해 질서를 잡는 데 평생을 쓴다. 겨우 그걸 하려 산다. 그런데도, 그걸 아는데도, 번번이 균형을 잃고 버둥댄다.


평화 없이 사는 동안 당연히 답도 없었다. 할 수 있어도 하기 싫었다. 이유가 없는데 자꾸만 묻고 이유가 없어 욕이 나왔다. 친구는 심플하게 말했다. 갱년기 증상이야. 갱년기뿐이겠는가. 사는 존재에겐 사실 평온할 이유보다 우울할 이유가 오만 가지 더 많다. 소통할 수 없어 그렇지 개미도 우울할 게다. 하지만 난 사람이잖아. 생각하는 존재.


집 나간 평화가 영원히 사라졌을까 봐 방정을 떠는 마음의 변덕이 문제다. 변화무쌍한 환경보다 나를 더 초라하게 한다. 어차피 조구마한 존재인데 마음까지 자처해서 조구마해지면 너무 조구마해 못 쓴다. 걱정할 거 하나 없다. 우울할 일, 불안할 일도 하나 없다. 집 나간 것들도 변덕이 심하긴 마찬가지인 데다 딱히 갈 데도 없다. 어차피 모두 내 마음 속이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고 고전의 문장은 가지런하고, 그거면 되었다. 이 하찮은 평화를 위해 기꺼이 깨어지고 또 다시 우뚝 어깨를 펴는 내 기특한 마음이 잠시 기댈 수 있는 주말 아침, 그거면 되었다.

참 치사하게도 그거면 되었다.


그리하여 가없이 소중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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