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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사과

by 글섬

나는 서비스 최전선에 있다. 한 주일이면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감사하다는 말을 수천 번 반복하고 주말이 되어 장렬히 전사한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 월요일이면 다시 기진맥진 되살아나 죄송하고 감사할 일을 위해 일한다.


모두가 사과 받고 싶어한다. 모두가 너무 조그마해서 사과를 받는 그 순간만큼은 잠시 커지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작아진다. 기꺼이 작아지면 순식간에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걸 터득했다.


세상은 점점 지지 말라고 가르치려 든다. 하지만,


원치 않은 술자리에 자발적으로 끌려가 술 마시던 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빨리 말해. 배려가 권리나 손해가 되지 않고 결국 보상 받게 된다고. 어차피 거절 못할 거니까 생각이라도 그리 하도록 빨리 그렇다고 말해줘.


그래서 나는 빨리 말해준다. 정말 그렇다고. 배려하는 그 순간엔 상대적 시간으로 손해 보거나 권리를 넘겨주는 듯하지만 찰나가 아닌 아주 기나긴 인생이니만큼 인연의 고리가 돌고 돌아서 반드시 내가 베푼 배려가 내게로 되돌아오는 순간이 왔었다고.

나만 좋다고 사는 건 손해 보지 않고 참 편하긴 하지만 잃는 게 없는 만큼 얻는 것도 없다. 그 다음이 없다. 오늘을 살지만 내일도 감당해야 할 오늘인데 오늘만 사는 셈이랄까.


"

이제는 내 멋대로 살다 보니 삶도 한 방향뿐이어서 무향무취무알콜 뭐 그런 느낌..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이 저 혼자 멍한 상태 같아

서로 버거워하면서 마구 뒤섞이다 보면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 반짝이는 것들을 줍곤 하거든

그 반짝임이 사라졌어 내 배려심과 함께.

사실 남을 배려할 때 가장 짜증스럽고도 충만한 건 나 자신이 아닐까 싶은데 난..

사람이 아무리 나빠도 진심은 통하고, 진심을 받은 자는 누구나 부채감을 안고 살아야 하니 그게 어떻게든 발현되더라구

부채감도 일종의 본능 같드라구 난

인생이 아아주 길잖아

네가 배려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는데

뭐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게 네게 큰 도움이 되는 일로 되돌아와.

난 그랬던 듯해.

"



빨리 말해달라던, 거짓말이라도 해달라던 딸은 나의 진심에 짜증을 낸다.

엄마 싫어. 맨날 옳은 말만 해.

흠. 짜증이 진심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결연히 사과한다. 이 숱한 죄송함은 은하계를 만겁으로 돌고 돌아 결국 내게로 돌아올 말임을 굳건히 믿고 기꺼이 사과한다. 그리고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면 하루치의 사과만큼 구겨져 내린 어깨를 쫘악 펴고 내 사랑스런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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